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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KAL858기는 폭파인가 추락인가?
 류재영
 2021-06-18 11:11:55  |   조회: 438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여객기는 폭파인가 추락인가?

1987년 10월 3일 밤 11시 청와대 집무실
박근혜: “우리 아버지 어떻게 하실래요.”
전두환: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집에 가있어.”
박정희: “그럼 내가하지.”
1987년 이라크 바그다드 총영사 주재자
강석재 총영사(1931년 출생 2001년사망)
1986년 이라크 바그다드 총영사로 시작하여 1988년 이라크 대사가 되었다.
강석재는 2001년 독침으로 암살당했다.
노영민 부이사관(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폭파범 김현희 여권을 발급하였다.)
신현희 계원(전강남구청장) 등.

대한항공 858여객기 폭파 1개월 전인 1987년 10월 27일 밤 12시 박정희는 북에 전통문을 보내 미화 6000만불로 북한과 밀약을 맺었다.
1987년 11월 24일 북한공작원 김현희(본명:최수지.평안북도 정주 출생)와 김승일(본명:김동명.평안남도)을 이라크 주재 북한 총영사관에서 인도받았다. 김현희와 김승일은 북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김현희와 김승일은 1987년 12월 안기부 최초 발표대로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라크에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말을 바꾸어 김현희가 일본 오사카 조총련 소속으로 일본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김현희는 KAL858기 탑승시에 이라크 총영사관에서 발급한 대한민국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1988년 MBC 이종훈과 이현종(문화일보논설위원)기자는 안기부 지령을 받고 1987년 KAL 858기 폭파공작원 김현희의 성장지인 일본 오사카를 추적 방송하였다. 거짓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기술이 탁월하였다.

1987년 11월 24일 선발조인 안기부 제1국 작전1계장 김무성(2020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안기부 기획조정실장보 문재인(대통령), 안기부 제1국 작전2반장 정윤회, 특수장비과장 김상철(연예인 김주혁의 숙부)이 C4도시락폭탄을 조립완성하였다. 11월 26일 북한공작원 김승일이 갑자기 도망쳐 사라졌다. KAL858기 탑승자명단에 김승일은 없다.
1987년 11월 28일 밤 10시 10분 대한항공858기 항공안전요원으로 신분위장한 김무성과 정윤회가 이륙점검 중인 대한항공 858여객기에 들어가 비행기 오른쪽 끝 부분 좌석 밑에 C4 시한폭탄 200그램이 든 검은 도시락 종이상자를 놓아두었다.
1987년 11월 28일 밤10시 40분에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 KAL858기에 중동근로자110여명. 김현희. 안기부간부 100여명. 해외선교봉사단 20여명(단장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이다.)이 탑승하였다.
현지시각 1987년 11월 29일 00시 중간기착지인 아랍에미레이트 공항에 도착하기 2시간전 박근혜: "아버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나중에 배신하면 어떻게 하실례요." 박상철(박정희): 곰곰히 생각하다 문재인을 호출하였다. "도시락 폭탄을 재조립하여 화장실 천장에 설치해". 문재인이 김상철과 함께 재조립하여 C4 1그램 시한폭탄을 조립하여 비행기 화장실 천장에 설치하였다. 현지시각 1987년 11월 29일 새벽 2시 안기부간부들. 김현희. 해외선교봉사단은 시한폭탄과 중동근로자들을 남겨둔채 KAL858기의 중간기착지인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공항에서 하기하였다.
KAL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13시 40분 버마(미얀마)해역 상공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추락하였다.
2020년 4월 대구 MBC에서 방영한 미얀마 앞 바다에 수장되어 있는 KAL858기 영상에서 동체가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KAL858기는 여객기 꼬리부분의 화장실 화재로 불시착 한 것이다.
화장실 화제 작전은 KAL858기에 안기부 간부들이 탑승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안기부가 개입하였다는 여론이 일어나면 KAL858기가 폭파가 아닌 기내 화제로 추락했다고 발표할 박정희와 박근혜의 플랜 B였다. 문재인(대통령)이 대구MBC를 통하여 KAL858기는 폭파가 아닌 추락이라고 방송한 것이다.
2021년 6월 미얀마 인근 해역에 수장되어 있는 KAL858기를 인양하여 블랙박스를 해독하면 추락원인과 탑승자명단을 확보할 수 있다.
2017년 11월 2일 연애인 김주혁이 자신의 자동차를 탑승하기 전 국정원 제1국 작전1과의 지시를 받은 김00의 독침에 사망하였다. 탄저균 독침이다. 탄저균의 양에 따라 사망 시간을 10여분 조절할 수 있다. 미국에서 개발한 것이었다. 김주혁은 문재인과 화장실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김상철의 친조카이다. 김주혁이 작은아버지 김상철로부터 문재인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의심하여 암살을 지시하였던 것이다.
문재인은 1974년~1977년 3월까지 군복무를 하였다. 특전사령부 703여단(충남 천안 목천면 소재)에서 복무하였다. 주특기가 C4폭탄 조립.설치였다.
1976년 4월 낙하산 훈련 중 불시착하여 요추결절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전두환이 여단장으로 있는 강원도 화천소재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1과 702연대에서 C4폭탄 조립.설치 조교로 활동하였다. 전두환여단장 표창장을 받았다. 이인연으로 문재인은 전두환을 사령관 각하라고 호칭하였다. 전두환 왈 "쟤는 나만보면 사령관 각하라고 해"라고 말했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폭파시 원격조정장치를 누른 장본인은 김무성이 아니라 문재인이었다. 자신이 C4폭탄 전문가라고 하면서 박근혜에게 자신이 누르겠다고 말했다. 안기부시절 문재인은 공공연히 자신이 특전사에서 C4폭탄 조교였다고 자찬하였다.
탑승자명단
A열:A3:박상철(박정희)A5:김문수A6:차명진A8:정세균A18:정태옥A21:김종인(2021년국민의힘당.교수)A22:김무성A32:박주선A52:설훈
B열:B3:박근혜B6:김현희(폭파범)B8:심상정B22:이낙연B32:백기완(사회운동가)B45:박철언B51:문재인B52:정윤회
C열:C3:추미애C5:김기춘C6:노회찬C21:송태근(해외선교단)C30:김윤희(해외선교단.전도사)C51:노무현C52:조용기(해외선교단장.목사)
D열:D8:이해찬D51:이희호
E열:E3:이완영(국민의힘)E8:한명숙E50:유시민E51:정대철 등 이외에도 70여명이 있습니다.
KAL858기 사고에 관심있는 언론사나 각종 사회단체들은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랍연합' 수사국에 EMAIL이나 FAX로 1987년 11월 28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KAL858기 탑승자 명단 자료를 요청하십시요. 원본과 대조하십시요.

안기부에서 활동한 인사들

1979년 박정희 사망공작을 주도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체제와 정권유지를 목적으로 소위 좌익세력(좌익사범)의 소탕과 회유공작(一海공작)을 꾀하였다. 민주화 운동. 사회운동. 노동운동 인사들을 구속하고 이들에게 사상전향교육을 실시하고 사상전향서를 받았다. 일해(一海)공작 일환으로 이들을 안기부 간부로 등록하고 특채하여 포섭하였다.
이해찬.설훈.심재철 등: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당한 후 안기부 사상전향교육을 받았다. 사상전향서를 제출하고 안기부 간부로 등록하였다. 1주일에 하루 안기부에 출근하였다. 설훈(1983-1993)은 안기부 정식간부가 되었다. 이해찬은 안기부 지령을 받고 노무현.문재인 등과 함께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를 창립하고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문재인은 안기부 정식 간부였고 노무현은 1주일에 하루 출근하는 안기부 간부였다.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는 안기부 정치공작단체였다. 이해찬.설훈.심재철은 1987년 KAL858기 탑승자다.
정대철.이희호: 1980년 김대중은 내란음모죄로 구속된후 사형선고를 받았다.안기부는 회유와 포섭 목적으로 사상전향서와 안기부 블랙간부에 등록할 것을 권유하였다. 석방조건이었다. 중앙정보부 이종찬(전국정원장)이 책임자였다. 김대중이 승락하였다. 1987년 11월 안기부는 김대중에게 KAL858기에 탑승할 것을 지령하였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대신 이희호와 정대철이 탑승하게 되었다.
한명숙: 1979년 반공법으로 구속되었다. 안기부 사상전향교육을 받고 사상전향서를 제출하였다. 1982년 1월 안기부 간부로 등록하였다. 1주일에 하루 출근하였다. 한명숙은 1주일 마다 안기부에서 주는 10만원으로 생활비에 충당하였다. 한명숙은 1987년 KAL858기 탑승자 명단에 들어있다.
김문수.심상정: 노동운동으로 안기부의 주요인물로 지목된 김문수는 1982년 안기부 사상전향교육을 받고 사상전향서를 제출하였다. 안기부 간부에 등록하였다. 김문수는 안기부의 노동운동 공작 지령을 집행하는데 협조자가 필요하여 대학교 후배이자 노동운가인 심상정을 유혹하여 안기부에 등록하게 하였다.
김문수와 심상정은 안기부의 지령을 받고 1985년 8월 최초 전국노동단체로 알려진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하였다. 노동운동 전국조직책이 성립되어 정치조직화 하는 것을 사전에 저해하는 것이 안기부의 목적이었다. 오히려 서울노동운동연합으로 노동운동이 전국적으로 널리 확대되자 안기부가 1986년 해체하였다. 심상정은 1992년 말부터 안기부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대가로 1993년 노동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되었다. 심상정은 1주일에 안기부에서 주는 10만원으로 생활비에 충당하였다. 1987년 KAL858기에 탑승하였다.
유시민: 1985년 '서울대학원 프락치 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된후 사상전향서를 제출하고 안기부 정식간부로 등록하였다. 유시민은 1992년말까지 안기부간부였다. 파렴치한 인물이다. 1987년KAL858기에 탑승하였다.
1987년 이후로는 소위 '주사파'로 불리우는 대학 총학생회 운동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상전환교육을 하고 사상전향서를 받았다. 물론 안기부 간부로 등록하였다. 송영길.우상호.임종석.안희정.유은혜 등이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정식간부

박근혜: 1979년 박정희 사망공작후 중앙정보부 간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박정희 지시로 제1국에서 활동하였다. 사내처럼 배포를 길러야 한다는 이유였다.
김무성.정윤회: 1980년 광주 5.18 공로로 1982년 안기부에 특채되어 제1국에서 활동하였다. 김무성은 1990년까지 활동하였다. 정윤회는 1991년까지 활동하였다. 1987년 KAL858기에 항공 보안요원으로 탑승한후 도시락 폭탄을 설치한 인물들이다.
이완영: 뇌물수수혐의로 1984년 감사원에서 해직되고 안기부로 이첩되었다. 이후 안기부에서 2001년까지 활동하였다. 이완영과 정태옥은 미화 5000만불과 이명박 대통령의 밀서를 가지고 2010년 2월 27`일 평양을 방문하였다. 밀서의 내용은 천안함 사건을 일으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완영에게 양심고백을 권유하십시요.
문재인: 사법연수원 수료후 검사로 임용받아 안기부에 파견근무하였으나 2년만에 퇴직후 1986년 안기부에 재입사하여 1994년까지 활동하였다. 문재인의 친부 문용현은 안기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 KAL858기 탑승중 박정희의 지시를 받고 김상철과 함께 도시락 폭탄을 재조립하여 항공기 화장실 천장에 설치하였다.
정세균: 고려대 졸업. 쌍용그룹 미국지사에서 6년 근무하면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84년 안기부 국내사업부((주) 일해)에서 1992년까지 활동하였다. 1984년 안기부 국내사업부 인재로 추천받아 영입되었다. 1987년 KAL858기 탑승자다.
차명진.이철우: 1987년부터 안기부정식 간부였다
주옥순: 1980년 광주 5.18 당시 박정희. 전두환 등이 식사를 한 전남대 후문 국밥집 딸이다. 1982년 안기부에 특채되어 2003년까지 활동하였다.
추선우.정옥련: 중앙정보부 중견간부 추상길의 자녀인 추미애와 추선우는 친형제지간이다. 정옥련은 추선우의 부인이다. 추상길의 추천으로 안기부에 특채되었다.
옛 중앙정보부 간부들은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30여명이 더 있습니다.
내무부와 검찰.법원에서 안기부로 파견되어 근무한 인물들
김기춘.박주선: 검찰에서 파견
정태옥: 기획조정실 1과장(2018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1986년 7월~1997년 활동 내무부에서 안기부로 파견 활동)
추미애:(법원 판사신분으로 1987년~1995년까지 안기부에 파견되어 활동, 2020년 법무부 장관)기획조정실 2계장. 등 이외에도 40여명이 있습니다.
추미애.홍준표는 1983년 3월부터 안기부에서 사법연수원 실무수습을 하였다. 1983년 3월 박정희에게 강간당한 추미애는 1984년 1월 여자아이를 출산하였다. 여자아이가 여가수 산드라 박이다. 산드라 박의 호적상 어머니가 추미애의 친여동생이다.

문재인은 6.25전쟁 실향민인가?

문재인의 조부 문익규는 충청도 한산군 마양포구(현 서천군 화양면)에서 1896년 출생하였다. 1917년 문익규는 충청도 한산군 동성리(이씨 집성촌.한산면 동지리)의 이향숙(본관: 한산 이씨)과 결혼하였다.
문익규는 1919년부터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서 일본형사 수사보조로 활동하다 1921년 일본 순사로 임명되어 1945년까지 일본형사로 활동하였다.
1946년부터 의용대로 활동하다 1947년 8월 충남 서천군 경찰서 서장에 임명되었다.
2021년 6월 충남 서천군 한산면 동지리 도로변에 있는 담장과 CCTV가 설치된 묘지가 문재인의 조부 문익규의 무덤이다. 묘지 비문에 문용현과 문재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재인의 친부 문용현은 1919년 생으로 1942년 경성제대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최순실의 부 최창민(최태민)이 법학부 동기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 인연으로 문재인이 안기부에서 알게 모르게 최태민의 은덕을 입었다.
최태민은 문재인이 안기부에서 사법연수원생 신분으로 실무 수습할 때 문재인을 최순실의 베필로 생각하였다.
본적과 주소가 충남 서천군 한산면인 문재인의 친부 문용현은 경성제대 때부터 공산주의에 심취되어 1947년 5월 북한으로 자진 월북하였다. 북한 중앙노동당 간부가되어 1947년 12월 북한 함경남도 흥남시청 농공과장으로 재직하였다.
흥남시청 사무 서기인 강한옥과 1948년 1월에 결혼하였다.
1950년 6.25 당시에는 북한 인민군 중좌(중위)에 임관되어 참전하였다.
1950년 9월 낙동강 전투에서 생포되어 거제포로수용소에 감치되었다.
1952년 1월 고향이 남한이고 경성제대 법학부 출신인 문용현은 사상전향서를 제출하고 출감하였다. 사실상 특혜였다. 고향으로 귀환하였다.
문재인의 친모 강한옥은 1950년 12월 흥남에서 철수하는 미군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피난하여 남편 문용형이 일러준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시댁으로 갔다.
노무현정권 시절 문재인의 주선으로 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강한옥은 북에있는 친족들과 회우하였다.
1953년 양력 2월 문재인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한산면사무소 옆 50미터)조모 이향숙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문재인은 출생 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서 9세까지 성장하였다.
문재인은 한산국민학교 2학년까지 재학하였다.
한산초등학교에 문재인의 생활기록부가 있다.
조모 이향숙의 친족(동지리 거주. 이석구가 문재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을 당시 동네 자랑을 하였다.)들이 2021년 6월 한산면 동지리에 거주하고 있다.
친부 문용현이 1953년 1월 한산면 면장에 임명되었다.
한산면 면사무소에 문용현의 사진과 행장이 기록되어있다.
1962년 1월 문용현은 경남 거제군청 농무과장으로 전출하였다. 친부 문익규의 일제행각이 떠돌았기 때문이었다.
친부 문용현은 1965년 경남 부산시 서구 구청과 경북 영주군청에서도 재직하였다.
문용현은 1971년 1월부터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문용현은 용산구 청파동 자취방에서 출퇴근하였다. 문재인과 강한옥은 부산에서 계속 주거하였다. 문재인이 경희대학에 입학할때 서울로 이사하였다.
문재인은 1974년~1977년 3월까지 군복무를 하였다. 특전사령부 703여단(충남 천안 목천면 소재)에서 복무하였다. 주특기가 C4폭탄 조립.설치였다.
1976년 4월 낙하산 훈련 중 불시착하여 요추결절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전두환이 여단장으로 있는 강원도 화천소재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1과 702연대에서 C4폭탄 조립.설치 조교로 활동하였다. 전두환여단장 표창장을 받았다. 이인연으로 문재인은 전두환을 사령관 각하라고 호칭한다. 전두환 왈 "쟤는 나만보면 사령관 각하라고 해"라고 말했다.

문용현은 1987년부터 승전하여 안기부 기획조정실장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KAL858기 폭파공작을 끝으로 1990년년 1월 안기부에서 퇴직하였다.
1992년 4월 문용현은 박근혜의 전화를 받고 외출하였으나 그 날 정윤회, 전여옥에게 독침으로 암살당하여 용인 모현리 야산에 묻혔다.
경희대를 졸업한 문재인은 1980년 7월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82년 3월 사법연수원 연수성적 수석으로 박원순(2019년 서울시장)과 함께 국가안전기획부(남산 안기부)에서 실무수습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노무현을 처음 만났다. 1982년 7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문재인은 1982년 8월 안기부에 정식 입사하였다.
1984년 2월 문재인(법무부 검사에서 안기부로 파견), 박원순(법무부 검사에서 안기부로 파견)은 자진사퇴하였다.
1984년 6월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옆에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하였다. 인권변호사,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였다.
2018년 9월 30일 연합뉴스 TV 오전 9시 30분 ‘길지를 찾아’에서 문재인과 노무현의 변호사 사무실을 방영한 부분이다.
문재인은 1986년 4월 남산 안기부에 재입사하기까지의 행적으로 인권변호사, 민주화운동가로 자신의 정치적 상징으로 활용하였다.
언론매체들도 이시기의 사진과 증거들을 정치적 선전물로 사용하였다.
KBS, MBC, MBN, 연합뉴스TV 등 언론매체에서 ‘남산 안기부비사’가 가짜뉴스라고 내세우는 증거로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박정희의 부름을 받은 문재인은 1986년 4월 남산 안기부에 재입사하여 기획조정실장보(1987년 기획조정실장이 문재인의 친부 문용현이었다.)로 임명되었다.
KAL 858기 폭파공작을 마친 문재인. 노무현은 1987년 12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안기기부 정치공작으로 설립된 단체였다.
문재인은 승진을 거듭하여 1992년 3월 안기부 기획조정실장보에서 제2국 국장에 올랐다.
1991년 12월 안기부 간부인 문재인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창단멤버로 가입하였다.
민변은 안기부의 공작으로 설립되었고 안기부 간부들의 신분위장수단이었다.
2021년 현재 민변 변호사들 90%가 국정원 블랙간부로 등록되어있다.
1992년 민변에 가입한 순수한 민주변호사들이 민변이 안기부 공작단체라는 것을 알고 탈퇴하였다. 이른바 ‘청목회 사건’이다.
2018년 12월 13일 오전 8시55분 ‘MBC 기획취재’ 방송분에서 1991년 ‘낙동강 2인조 강도살인사건’을 소개하면서 사건변호인이 문재인이라는 공문서를 보이면서 인권변호사로 선전하였다.
사실상 문재인이 안기부 간부라는 뉴스가 가짜라는 선전이었다.
‘낙동강 2인조 강도살인사건’은 문재인이 안기부 간부이면서 민변 부산.경남지부 대표로 등록한 인연으로 1992년 4월에 맡은 사건이었다.
문재인이 재판과정에서 경찰서에서 피의자들이 한 자백은 ‘고문에 의한 강제.허위자백’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더라면 무죄로 판결났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일관 불성실한 변론태도로 피고인들을 구제하지 않았다.
문재인은 현직 안기부 간부라는 것이 들통이나 민변에서 1993년 1월에 탈퇴하였다.
1994년 정식 변호사개업을 한 후부터 사회적으로 인권변호사, 민주화운동가로 자신을 화장하였다.
위 글의 사실내용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2021-06-18 11:11:55
222.99.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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