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좋은 선배의 자격
백묵처방 - 좋은 선배의 자격
  • 최재길 (교양학부)교수
  • 승인 2011.03.22 17:57
  • 호수 12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성을 다해 서로를 대하자

나는 수학자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참 재미가 없다. 뭐든지 분석하려든다(직업병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만의 생각인가! 나 혼자만의 어줍지 않은 세상바라보기인가!) 존재하는 것은 뭐든지 그 자체 내에서 뿐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동물(수컷, 암컷)도 식물(수술, 암술)도, 형상(形狀)세계뿐만 아니라 성상(性相)세계도 그렇다. 내외, 전후, 좌우, 상하, 장단, 광협 등 모두 상대적으로 되어있다. 물론 더 세분화할 수도 있지만….

너무 어렵게 시작하나보다. 쉽게 이야기하면 남자와 여자다. 세상의 절반은 남자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다. 학교도 그렇다. 남녀뿐만이 아니라 선배, 후배가 서로 어우러져 학교를 구성한다. 물론 교수와 제자로 나뉠 수도 있다. 어떤 판단으로 구별지어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문제는 조화다.

가끔 학우들을 따라 MT를 가면 조금은 아쉬운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내 학창시절 때도 그랬다). 신입생이 자기는 재수·삼수를 했다고 대우해 달라는 둥, 선배가 너는 어디까지나 후배니 후배로써 대할 수밖에 없다는 둥. 물론 나름 주장의 정당성을 제시하며 말한다.

난 생각해 본다. 뭐가 옳은 것인가! 누구의 말을 따라가야 하나! 결론은 선악의 판단이 아닌 이상 누구의 말도 옳다는 것이다. 단지 주장하는 상대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일 뿐. ‘단지’라고 표현했지만 중요한 문제다.

‘좋은 선배’란 선배만이 생각해볼 문제인가? 위와 같은 나의 논리라면 선배, 후배가 같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쉽게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수수작용(授受作用)이란 말을 좋아한다. 受授가 아니라 授受다(에이 또 어렵게 표현된다!). 쉽게 말해서 ‘Take and give’가 아니라 ‘Give and take’다(이 표현도 맘에 들지는 않지만…). 먼저 주는 것, 먼저 행하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대가를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가? 당연히 아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보며, 배우며, 따라하며, 성장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는다. 어려운 것 같지만 어렵지 않다. 선배가 먼저 행함에 진심이 담겨있다면 후배도 감동받아 행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후배가 먼저 희생하며 행하면 선배는 자극을 받아 행한다. 꼭 좋은 선배라는 사명감에서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진리다.

행함에 있어 방법론까지 말하지는 않겠다. 나름 사는 지표와 행동기준이 다르니까. 자기의 생활기준 안에서 양심이 가리키는 대로 하면 좋겠다(너무 교과서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 있어 선배의 권력(?)이 행사된다 해도 양심에 흔들리지 않는 행동이라면, 한쪽이 아닌 양쪽을 위한 행동이라면, 후배들도 안다. 이 선배는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난 ‘誠’이란 한자를 참 좋아한다. 이 글씨를 처음 봤을 땐 ‘말을 이루다’ 즉, 약속을 깨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정성 성’이라 알았을 때 많이 생각했다. 서양철학은 역동적이다. 먼저 주장(言)하고 증명을 하는 식이다(마치 수학서적처럼). 한편 동양철학은 잔잔하다. 중용철학처럼 ‘절제’다. 말도 하지만 조용한 이룸(成)이 중요하다. 이 글씨는 서양과 동양이 결합하여 세상을 완성한다는 감동을 준다. 세상의 근본은 정성이 아닐까! 선배든 후배든 정성을 다해 서로를 대하면 우리가 공부하는 이 단국교정은 참 행복해질 것이다.

최재길 (교양학부)교수
최재길 (교양학부)교수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