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을 때 가장 찬란한 길
함께 걸을 때 가장 찬란한 길
  • 고민정 기자
  • 승인 2011.03.30 22:15
  • 호수 12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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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오징어잡이 어선의 불빛이 수평선을 따라 늘어서 있는 동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고 놀았던 1학년 MT 때였다. 그때는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나의 시에 대한 열정이 넘쳐날 때였다. 글에도 여러 장르가 있음에도 나는 유독 시를 좋아했다. 그리고 아무거나 시로 썼다. 학과 MT 때마다 치르는 백일장에서도 시를 썼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후배야 이건 시가 아니다. 이건 시가 아니니까 찢어버리자.” 나도 생각해보니까 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진지하게 백일장에 임해서 작품을 내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기에 그 자리에서 시를 찢었다.

그리고 기억력이 썩 좋지도 않은 내가 그날 MT에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이 있는데 밤늦게까지 사람들과 숙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그 선배가 창밖의 바다 멀리 보이는 불빛 하나를 가리키며 뭔지 알겠냐고 물었다. 나는 순수하게 “오징어잡이 배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걸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좀 더 앞의 불빛을 가리키며 저건 자신일 거라고 말했다.

당시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뭔가 깨닫는 게 있다. 그날 밤바다 위에 쭉 늘어서 있던 그 불빛들은 우리가 걸어 가야할 길이었다. 내가 가는 길의 조금 앞에서 어느 누군가 환하게 불을 밝혀주고 있고 또 그 앞에는 더 밝은 빛이 뒤에 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빛을 내고 있었다.

신설학부 관련 기사로 만난 한 신입생은 여러 방면으로 진출한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을 본보기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리고 첫 발을 잘 내딛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커보였다.
최근에 취재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올해 신입생들의 학구열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1학년 때부터 ‘스펙’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며 학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보다는 자신의 공부와 일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게 뚜렷이 보인다. 특히나 선후배 사이의 유대감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지금 누가 들으면 시와 시 아닌 것을 가르고, 그걸 찢어버리자고 했으니 낯 뜨겁게 들릴지 모를 대사다. 그렇게 문학의 진정성을 토로하던 선배들과는 술이 없으면 자리가 아니라는 중국 속담을 운운하며 모이면 술을 마셨고, 겨우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선배들을 붙들고 별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거나 하며 시시껄렁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면서 영어 공부나 더 하라고 말해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고 자취방에 재워준 선배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허허” “하하하 제가 좀 그랬죠?”와 같은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가벼운 척하는 그 뒤에는 뭔가 묵직한 끈끈함이 생긴다. 그래서 그 시시껄렁한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동문발전기금으로 학교 재정에도 큰 힘을 얻고 있다. 동문의 관심 없이는 학교가 발전하기 어렵다. 그들은 성공에 대한 보답만이 아닌 대학생활의 추억, 선후배간의 사랑과 끈끈함이 있었기에 모교에 대한 애정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일 거다.

어느 누구에게나 제 시간은 중요하고 찬란하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의 양 옆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는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이 아닌 수많은 빛이 함께 걸어야 그 길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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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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