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 ③천안캠퍼스 앞 식당 '한상' 배달원 20년 임태봉 씨
행복을 찾아서 - ③천안캠퍼스 앞 식당 '한상' 배달원 20년 임태봉 씨
  • 서준석 기자
  • 승인 2011.04.12 12:32
  • 호수 1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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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한 그릇 시키신 분!

행복 한 그릇 시키신 분!

웃음과 기쁨을 배달하는 행복한 배달원

어느 동네에 가든 유별난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이다. 천안캠퍼스에도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배달원이 있다. 배달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본이고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우스운 농담을 던져 학생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보기만 해도 즐거운 배달원 임태봉 씨다.
그의 하루는 배달로 시작해 배달로 끝나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딜레마인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어쩌면 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기자가 인터뷰를 하며 느낀 그의 삶은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매일 똑같은 일상’에 대한 불평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는 하루하루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난 정말 평범한 사람인데….”라는 그의 대답이 특별한 사람만을 찾으려 했던 기자의 마음을 꿰뚫은 것 같아 왠지 모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린 모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웃음을 배달하는 임태봉 씨. 그의 삶에서 행복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의 진솔한 인생이야기를 쫓아가 보자.

■발자취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지금처럼 개구쟁이였나?
전혀 아니었다. 나의 혈액형은 AB형이다. 그래서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 지금처럼 외향적인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동네 어른들을 통해 인사 잘 하고 명랑하고 똑똑하단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똑똑하다는 얘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는 얘기였던 것 같다. 한글을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땠을 정도니 공부는 참 못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나?
10년 전쯤 교통사고가 심하게 났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머리까지 다치게 되어 당시 사고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병원에서 거의 1년 동안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 때문에 당시에 형님과 함께하던 음식점도 1년간 쉬어야 했다. 교통사고도 때문에도 힘들었지만 모든 일들이 잘 풀리지 않던 상태에서 사고까지 당하게 돼서 더 힘들었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
누구나 다 똑같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멋있어 보이는 사람의 직업이 대부분 장래희망이었을 거다. 동네 사는 형이 군인이었는데, 당시 군복 입은 형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어렸을 적에는 군인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일
▲배달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22살 때 처음 ‘신성관’ 중국집 배달부로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단국대에서만 배달로 19년 째 일하고 있으니 나의 젊은 시절은 배달인 셈이다.

▲배달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자주 봤다. 노래를 부르며 배달을 하는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
처음에는 배달을 한다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마스크도 쓰고 최대한 노출되지 않으려고 애썼었다. 그런데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생각을 달리하여 학생들과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처음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전우의 시체’라는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른 것이다. 그 노래가 학생들로부터 호응이 좋아서 자주 부르다보니 다른 노래들도 부르게 되었다. 당시에는 옷도 남다르게 입었었다. 헬멧은 독일군 헬멧을 쓰고 옷에는 글도 넣어서 아마 학생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18번(가장 자주 부르는 곡)도 있나?
자장면 배달할 때 노래를 시작해서 그런지 ‘전우의 시체’를 바꿔 부른 것을 가장 많이 불렀다. 최근에는 ‘무조건’이나 ‘황진이’를 자주 부른다. 전국 노래자랑을 시청하던 중에 ‘아 저 노래다!’ 싶어 부르기 시작했다.
한식을 배달하니 한식의 이름을 가사로 넣어서 불러달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왠지 한식은 박자가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자장면을 넣어서 부른다. 역시 자장면이 개사해서 부르기엔 최고다. 가사는 즉흥적으로 바뀔 때가 많다.

▲배달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뭐라고 하나?
“노래 잘 들었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다. 사실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서 자주 하려고 한다. 가수가 된 기분도 들고 재미있다. 하지만 아무 때나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거나 목상태가 안 좋을 때는 하지 않는다.

▲배달할 때 보면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데, 항상 즐거운가?
어떻게 사람이 항상 즐거울 수 있나. 괴로울 때도 많지만 학교만 가면 엔돌핀이 솟아서 즐거워진다. 때문에 교내에선 항상 웃게 되고 학생들을 보면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장난도 많이 치고 농담도 자주 하게 된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웃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힘들다고 인상 쓰고 불평만 하면 자기에게도 좋지 않다. 그리고 그냥 스치는 사람일지라도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모르니 좋은 인상으로 남는 것이 좋지 않겠나.

▲배달일은 만족하나?
자기 일에 만족하니까 엔돌핀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 재미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은 재미있게 해야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면 안 된다.

▲배달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배달 일을 거의 밑바닥 일로 보고 하찮게 생각해서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짱깨’라는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 짱깨는 중국말로 ‘장구이’다. 해석하면 주인아저씨라는 뜻이다. 결국 짱깨를 시켜먹는다는 말은 주인아저씨를 시켜 먹는다는 말 이다. 이것은 애초에 잘못된 표현이다. 주인아저씨를 먹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 대학생들은 모두 지성인인데 이런 점은 고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배달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있다면?
음식은 3박자다. 전화로 주문 받는 사람,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사람, 배달 해주는 사람, 이렇게 3박자가 잘 맞아야 배달도 빨리 가는 거다. 3박자가 맞아 떨어졌을 때 나오는 신속함! 이것이 나만의 배달 철학이다.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특별한 원동력이 있나?
단순히 배달만 하기보다 배달을 하면서 웃음을 같이 건네 줄 때, 또 학생들이 그런 나의 유머를 듣고서 웃을 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웃으면서 나올 때 가장 뿌듯하다.

■ 인연
▲단국대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
사고로 인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92년도 쯤 이었던 것 같다. 당시 형님이 하시던 ‘신성관’으로 단국대와의 인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 ‘신승관’으로 이사를 하면서 이름도 바뀌게 되고 그때부터 진정한 배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한식집으로 바뀐 건 3년 전쯤이다.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항상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듯이 웃으면 주변 사람들도 다 행복해 지는 것 아니겠나. 힘들어도 웃자!

▲단대신문이 주로 밥시켜먹는 학우들의 식탁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호에 임태봉씨 기사가 나가게 되면 식탁보로 사용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 한마디 해 달라.
내 얼굴이 음식 밑에 깔리는 것은 용납 못하겠다. 물론 기사가 나가면 창피하기도 하겠지만, 그래서라도 더 깔지 못하게 배달하면서 당부하겠다.
“단국대 학우 여러분 단대신문은 여러분들의 소중한 등록금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밥 먹을 땐 다른 신문을 이용해 주세요!”

■행복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나?
학기 중에는 왁자지껄 시끄럽다가 방학 때는 너무나도 조용해져서 적막한 느낌이 많이 든다. 또 예전에는 학생들이랑 술도 자주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친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면서 학생들과의 유대감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볼링장을 운영 하는 것이 꿈이다. 볼링을 좋아하기도 하고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것을 목표로 살아간다. 언젠간 이룰 수 있지 않겠나.

▲임태봉에게 행복이란?
행복이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을 하다보면 물론 재미없고 힘들 때도 많다. 하지만 불평하고 힘들어 하는 것 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행복이다.

서준석 기자 seojs05@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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