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행책 편
4. 여행책 편
  • 길지혜(언론홍보·05) 동우
  • 승인 2011.04.12 14:45
  • 호수 12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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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순도만큼 여행자는 빠져든다

4. 여행책 편

 


  병술년 정초에 나온 故 박완서 선생의 기행산문집 좬잃어버린 여행가방좭 에선 다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온갖 것을 경매에 부쳐서 잊혀진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기도 한단다. 매년 1월이면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에서 여행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여행 가방을 공개경매에 부치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는 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굉장한 귀중품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가방은 작은 단서도 없을 뿐더러 잃어버린 주인의 애착과 성의가 없다는 증거니 건질만한 물건이 없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경매 전 경찰이 미리 개봉해 위험물을 확인하고 밀봉한 후 경매에 부쳐지는데 낙찰이 되면 가방은 즉시 관중들 앞에서 개봉되어 만천하에 공개된단다. 이러한 일련의 이벤트를 두고 박완서 선생은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숨은 욕망은 국적이나 개인의 인격 차에 상관없는 것 같다” 라며 관심을 보였다.


  경매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때때로 우리는, 아주 합법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사생활을 낱낱이 엿볼 수 있다. 아예 상대편에서 봐주십사 하고 드러내는데, 바로 ‘책’이 그 경우다. 책에서 작가는 나체로 비틀거리기도, 온몸을 고어텍스로 무장한 산악인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뼛속까지 털어낸 솔직한 고백이 있고, 숨기려하면 더 보고싶어 하고, 보여주면 내키지 않아하는 연애선수들의 밀고 당기기로 애간장을 녹일 때도 있다. 작가들의 이런 각기 다른 경험담과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그것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여행의 기쁨이다.


  우리는 책 속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의 소년과 마주해 인사하고, 여행자가 그 소년과 눈인사했던 풍경을 상상한다. 작가가 눈 덮인 길을 걸으며 옛사랑을 추억할 때는, 독자도 첫사랑과 나눈 기억을 되살린다. 여행 에세이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가장 최신의 알짜배기 정보를 모아 엮은 것과는 참으로 다르다. 작가가 여행을 하며 보았던 풍경, 귀담아 들었던 소리, 여행지 특유의 냄새를 함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끈다. 이로써 여행지에서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작가에게 우리는 본능적인 친근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고 싶거든 천편일률적으로 정보만 나열된 책 외에, 한사람의 여행에 대한 고백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참 이율배반적이게도, 한때 나는 여행작가 김동영의 두 번째 작품 좬나만 위로할 것좭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후 그의 책을 멀리했다. 사람들이 책을 살수록 그의 통장에 여비가 한푼 두푼 마련되어 이제는 지난했던 첫 떠남을 기억하지 못할까 해서다. 4년 전 그의 첫 번째 작품 좬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꺼야좭 가 세상에 첫 선을 뵈고 ‘김동영 앓이’를 한 터였는데, 자칫 유명세로 인해 그가 초심을 잃게 될까 괜한 노파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 굴리고 있으면, 데이트 전에 애써 만진 머리를 한순간 헝클어뜨리며 스치는 한 줄기 상쾌한 바람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서 숨길 수 없는 작은 떨림 같은 게 느껴집니다. 여행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연인이고 동경이며 로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며 담담하면서도 여행자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고, 솔직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필체로 사람들의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 내고 있다.


  '끌림'이란 산문집으로 자신의 10년치 여행기록을 풀어낸 이병률 작가의 글 역시 내가 하는 여행의 좋은 동행자다. 그는 이제 출판사 ‘달’의 편집인이 되어 여행자에게 꽤 괜찮은 책들을 선보이는데, 언젠가 책을 뒤적이다 그의 이름을 만나면 함께 반가워해줘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감성적인 여행에세이만이 여행책의 전부는 아니다. 세계 최대 여행전문 출판사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은 인기 여행지는 물론이고 오지의 섬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 발굴해 엄선한 여행정보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여행을 할 때도, 호주 자동차 여행을 할 때도 두툼한 ‘론니플래닛’을 들고 다니는 여행자를 꽤 봤으니 그 이름값을 짐작할 만하다. 여행정보가 어찌나 철저하고 상세한지 아프리카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세관의 압수 대상 품목일 정도라고 한다. 그 이유는 여행객에게 바가지 안 쓰는 법만 잔뜩 가르쳐주고 있어 외화벌이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호주에 본사를 둔 론니 플래닛은 700여종의 여행 관련 서적을 17개 국어로 출판하고, 그 판매량도 매해 600만권 이상이라고 하니 명성만큼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영문 한국 가이드북은 총알택시를 타는 법, 민방위 훈련 대처 요령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여행지에서 충분히 겪을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봄바람이 살랑대며 봄기운을 뿌리는 요즘.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의 한 구절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 낡은 반복으로부터’ 가 괜스레 마음을 울린다. 여러분도 책장 속에 여행 책을 다시 꺼내보며, 주인 잃은 여행가방 들춰보듯 남의 여행길이 궁금해진다면, 지금이 바로 여행을 떠날 때다.

미스트레블(Misstravel.co.kr)

길지혜(언론홍보·05) 동우
길지혜(언론홍보·05)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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