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자석 - 말줄임표와 쉼표, 그리고 마침표
주간기자석 - 말줄임표와 쉼표, 그리고 마침표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1.04.12 17:45
  • 호수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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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끝은 매번 “이젠 저희도 지쳐서…”라는 말과 말줄임표의 등장이었다. 속으로 ‘나오겠거니’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마침표 대신이었다. 말줄임표 안에 갇힌 말들의 무기력함은 안쓰러웠다.

피해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두였다. 다친 다리에 반깁스를 차고 목발을 짚은 채 고우리 기자와 만난 서 양은 두 시간의 인터뷰 내내 울었다. 사회과학대 회장 조혜민이 같이 울었다. 전화기 넘어 윤 사무국장의 목소리도 자주 흔들렸다. 감정에 복받쳐 말이 끊어지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자신의 선거를 도왔던 두 사람 사이에서 총학생회장 최민석의 어깨도 축 처져있었다. 방학 때부터 준비해온 공약들이 풀리며 “취재 해달라”고 들떠하던 모습은 없었다. “이젠 지쳤다. 끝나기만을 바란다”는 동아리연합회 부회장 최미선과 텅 빈 동아리연합회실에서 만났을 때는 준비해 갔던 질문을 차마 끝까지 하지 못했다. 성폭력상담소, 학생과, 단과대 회장들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직설로 하자면, 단국대 ‘학우’들이 이렇게 만들었다. ‘OT 성추행 사건 전말’의 ‘OT 성추’까지만 보고 마치 다 아는 체 한쪽으로 고개 돌려 침을 뱉은 그들이 2차 가해자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나용재(사학·4) 문과대 회장도 “‘법에도 피의자의 무죄 가능성을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 있다”며 “같은 학교 학생들이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사실판단이 끝날 때까지 어느 한 쪽을 성급하게 비난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고 당부해달라”는 그의 말이 낯익었다. 말줄임표 안에 갇혀있던 말들 중 하나이리라.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추문이었다면, 다른 대학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안주거리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상을 반씩 나눠 앉고 한 솥에 든 밥을 나눠먹는 학우들이 그래선 안 된다. 우리가 이들에게 해야 할 것은 위로다. 성급한 비난이 아니다. 우리에겐 쉼표가 절실하다. 마침표가 오기까지 한번 쉼표를 찍어야 한다.

‘끝.’을 찍는 데는 서 양과 윤 사무국장의 대화 외에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주할 껄끄럽고 끔찍한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갈 순 없다. 사법기관에 기대지 말기 바란다.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사과대와 타 단과대들의 대결 구도도 좋지 못하다. 타 단과대들 입장에서 사과대의 대자보 게재는 비난하지는 않을 수 없는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사건의 초점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딱 할말만 하자.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가려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일이다.

말줄임표를 더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은 쉼표가 반갑다. 마침표가 빨리 찍히기 바란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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