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기억할게
[백색볼펜]기억할게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05.03 19:22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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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친구, 남형이에게

  

◇ 쓰나미가 할퀴고 간 미야기현 나토리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열심히 잔해더미를 들춘다. 기자가 다가와 묻는다. “할머니, 무엇을 찾고 계세요?” “앨범을 찾고 있다우.” “앨범이요?” “그렇다우, 세간살이야 정부가 해주겠지만 앨범은 못해준다우.” 지난달 9일, 필자도 하루 종일 지나간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찾았다기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힐 정도로. 그리고 집에 돌아와 미야기현의 할머니처럼 한 장의 사진을 찾았다. 능글맞은 미소로 웃고 있는 내 친구.

◇ 지난 겨울, 신문사 동기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군대에 갔다. 마음이 여린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늘 웃고 다니는 아이였기에 군대 가서도 적응 잘하고 잘 지내는 줄 알았다. 군대 가서도 여전히 활발한 미니홈피의 업데이트를 보며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 친구는 ‘사회도 군대도 지긋지긋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 그것도 휴가 나와서 말이다. 복귀하지 않고, 술도 안마시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같은 하늘 아래 있던 친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 전에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진짜로? 그 아이가? 그것도 자살로? 말도 안 돼.

◇ ‘징조’라는 건 언제나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 추인되는 것 아닐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 친구로부터의 징조를 찾아보는 일. 아, 그 때 그래서 그랬던 거였을까.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왜 좀 더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을까. 그 때 이렇게 행동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문상을 다녀온 뒤에야 실감이 났다. 정말 걔가 죽은 거구나. 처음으로 접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다. 앞으로도 겪게 될 지인들의 죽음이겠지만 그 시작이 그 아이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 남형이에게,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냐? 김남형, 이 나쁜 놈. 나한테는 연락 한 번 없더니 그렇게 가버리냐. 네가 떠나고 나서 드는 생각이지만 온통 고맙고 미안한 일밖에 떠오르지 않는 걸 어떡하면 좋을까.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넌 늘 잘 챙겨줬는데, 난 해준 게 없는 것 같아서 그게 슬프다. 너한테 받은 건 한가득 많은데 내가 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게 참 슬프다. 이제 해줄 수 없으니까. 술 먹고 만날 너한테 꼬장 부려서 미안. 힘들 때만 찾아서 미안. 너 힘들어 하는 거 알았는데 그냥 모른 척 해서 미안. 네 맘 듣고 못들은 척 대답도 안 해줘서 미안. 저번에 화냈던 것도 미안. 좀 미워했던 것도 미안. 나 편하자고 미안한 일만 미리 잔뜩 말해서 그것도 미안. 남형아, 이제는 마음 편히 잘 지내고 있어. 못다한 이야기는 천천히 또 할게. 안녕….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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