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5. '위대한 평민’을 길러내는 스승
행복을 찾아서 5. '위대한 평민’을 길러내는 스승
  • 박윤조 기자
  • 승인 2011.05.17 15:42
  • 호수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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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삶을 누리는 법 알려주고 싶었다”

‘위대한 평민’을 길러내는 스승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삶을 누리는 법 알려주고 싶었다”
변화하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행복을 찾아서 5. 인평자동차정보고 윤재윤 교사

부평에 위치한 인평자동차정보고등학교. 늦은 저녁시간에도 아이들은 곧 있을 자격증 시험을 위해 열심히 실습하고 있었다. 교내에는 우수 특성화 고등학교 선정 등 여러 플랜카드가 눈에 띈다. 언론매체에서도 1년에 10번 이상 학교에 취재를 온다. 그런데 취재시에는 학교 이야기보다 선생님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입학이 결정되면 겨울방학 때부터 공부를 무료로 시키고, 매일 저녁 9시까지 방과 후 수업도 선생님들이 다 무료로 수업을 한다. 이 덕분에 인천에서 기초 학력 미달자가 ‘0’이다.
하지만 이곳은 성적이 못 미쳐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이다. 대체로 중학교 때 백 명 중에서 70등 전후의 아이들이 이 학교로 주로 입학한다. 이런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자신감을 심어주도록 변화시킨 데는 윤재윤(44) 선생의 힘이 컸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처럼 다가가고 스스로 변화하길 참고 기다리는 스승.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스승. ‘스승찾기’ 연락처 공개를 거부하는 교사가 갈수록 늘어가는 시대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스승이 아닐까.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날, 윤재윤 선생을 만나봤다.


>> 발자취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난했었다고.
아버지가 정치지망생이라 국회의원 출마도 했었지만 한 번도 당선이 된 적은 없다. 그런 야망 때문에 가정을 돌보지 못하여 집이 어려웠다. 어머니가 돈을 벌어 왔고, 아버지가 농사를 하긴 했었지만 다 실패했었다. 시골인데도 남의 집에 얹혀살았다. 중학교 때 산 초가집에는 비가 새고 굼벵이가 떨어질 정도였다. 끼니도 잘 해결하지 못했었다. 삶에 대한 비전도 없고, 매일 매일이 무기력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중국집, 통닭집, 세차장 등에서 일했었다. 어머니가 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권유해서 야간학교를 찾다가, 부평고등기술학교(현 인평자동차정보고) 야간과정을 다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주경야독이 계속 됐다. 전문대학까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였고 3년 정도 일했을까, 교장선생님의 요청으로 이 학교에 교사로 오게 됐다. 


▲공부를 하다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텐데, 끝까지 하게 된 이유는.
그게 전부였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 밖에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꿈도 교사였나.
슈퍼마켓 사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렸을 때 집에 없는 게 많았으니까 슈퍼마켓 사장이 되어 내 아이들에게는 슈퍼마켓에 있는 모든 것들을 먹을 수 있게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교사가 되었고, 준비가 안 되어서 힘들었었고 좌충우돌과 실패, 실수를 반복했다. 스스로도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점수를 준 것도 마흔이 넘어서다.

 

>> 교직생활


▲인평자동차정보고등학교와는 오랜 인연을 맺은 것 같다.
거의 30년, 교사로 온 지는 18년 됐다.


▲기억에 남는 제자는.
너무 많다. 누구 하나 꼽으라면 애들이 서운해한다. 아주 잘하는 특별한 1%의 애들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밑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10%의 아이들이 대체로 기억에 남는다.
전과가 있었던 아이가 변화해 학교를 졸업한 아이, 70일씩 결석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졸업시켰던 아이, 의기소침했었지만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모범적으로 변한 아이 등 이 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려고 설득하는 것에 실패한 적은 없었나.
한 아이가 가정형편이 정말 어려웠다. 집에서도 같이 밥도 먹고, 아들처럼 잘 챙겨줬는데 2학년 때 부터 삐딱선을 타더니 3학년 때는 완전히 엇나가서 교도소에 갔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아이 때문에 독한 마음을 먹고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아야겠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중간에도 몇몇 내 곁을 떠난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변화시킬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은 경청이다. 그 이후에는 긍정적인 자세, 마인드를 갖게끔 한다. 그 다음에는 능동적인 자세를 갖도록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정직한 아이,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평생의 스승을 만들기 위해 독서훈련을 시키고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믿음. 신뢰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늘 다가가려고 한다. 아들과 아버지사이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다. 내 아들 삼형제에게 야단을 칠 때도 있고, 또 아들들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100% 모든 게 다 맞을 순 없지만 서로 신뢰를 한다는 거다. 학교에서도 우리 반 아이들과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처럼 서로 믿어준다면 그 이상의 것이 뭐가 있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까지 포기하고 왔는데 후회한 적은 없나.
교사가 사람을 길러내는 것과 같은 가치, 후배들이 나를 보고 힘을 얻는 것. ‘이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 약간 불안함을 느낀 적은 있다. 2000년도까지 학급수가 계속 줄었다. 학생 모집이 안 돼 문을 닫을 지경까지 곤두박질쳤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또 교사를 선택할 것인가.
당연하다.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교사에 대한 준비를 더욱 잘 할 것이다. 물론 내가 잘한 부분도 있겠지만 잘 못해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부분도 있다. 아이들을 미처 챙겨주지 못한 부분,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데 노력했을 것이다.

>> 삶과 행복


▲학생들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표정이 밝은 아이들은 꿈이 있다. 정말 미래에 대한 꿈도 없고 준비하지 않는 아이들은 표정에 항상 그늘이 져있다. 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변호사, 판사 등 남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직업이 아니라 자동차 카센터 사장님,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소박한 꿈을 갖는다. 평범하게 사는 모습을 꿈으로 갖고 있는 학생들이다. 그런 꿈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표정도 밝고 행복해 보인다. 


▲언제 가장 행복을 느끼나.
아이들이 변화할 때. 이번에 한 아이가 편지를 써왔다. 중학교 때 100명 중에 67등 하던 아이가 이번에 우리 반에서 3등 했다. 그 아이가 하는 얘기가 중학교 때는 안 그랬는데, 선생님 얘기를 듣고 태도가 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의 코칭이 반응을 나타낼 때 뿌듯하다. 2등 하는 아이가 1등하는 것에는 관심이 가질 않는데, 방법을 모르던 아이가 방법을 제시했더니 변화로 나타날 때 제일 행복하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코칭하는 것이, 선생님들도 결국 좋은 직장, 인정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닌지.
아이가 소극적이고 정체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라, 능동적인 아이가 되어 사회에서 무엇을 하든 자신감을 얻어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무기력 하던 아이가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 현대에 들어가고 싶어’ 이런 꿈이 생겨서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런 꿈, 도전할 수 있는 마음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최고만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라, 최고를 바라는 마음도 심어주고, 만약 최고가 아니더라도 ‘나는 행복하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위대한 평민’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나 부모들의 생각을 보면 ‘위대한 평민’을 길러내는 게 아니라 항상 특별한 1%를 만들어 내려고 강조한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본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자기 마음가짐에 달린 것 같다. 평범한 것이 어려운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선생님처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일을 하다가 보면 ‘아, 이거다’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대기업에 있었을 때 인정도 받고 월급까지 많이 주니 행복했다. 근데 그것은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그 때는 그 외 다른 것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학교에 와보니까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월급, 상여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이라는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헬렌켈러는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에서 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윤재윤 선생은 이 말을 믿어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돈이 아닌 가치 있는 일을 할 때에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이라는 윤재윤 선생과 헬렌켈러가 겹쳐 보였다.


박윤조 기자 shynjo0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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