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편지
[백색볼펜] 편지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05.18 21:05
  • 호수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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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

 


◇ 가을 밤,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띄운다.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감사하게 되오, 당신도 나를 남편으로 얻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을까 두렵소.” 소설가 조정래는 아내인 김초혜 시인에게 절절한 연애편지를 띄웠다. 1985년 9월 22일 쓴 편지 말미에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당신의 조정래’라고도 남겼다. 강인숙이 엮은 『편지로 읽는 기쁨과 슬픔』(마음산책, 2011)이라는 책은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이 쓴 친필 편지 49점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 담긴 편지에는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등 작가의 내밀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자녀에게, 진정한 벗에게, 동료에게 진심을 다해 쓴 편지는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필자들이 육필로 쓴 편지를 보며 그들의 진심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 이메일이 활성화되고 휴대폰 문자가 일상화된 요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다. 친필 편지는 다소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어느새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펼쳐 읽는 것 자체가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이메일이 한창 생겨나기 전 무렵,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만해도 친구들끼리 편지를 주고받는 게 유행이었는데 말이다. 당시에는 하굣길 문구점에 들러 예쁜 편지지를 고르는 게 일상이었다. 늘 ‘앞으로도 사이좋게, 친하게 잘 지내자’로 마무리되던 편지였지만 줄 때나 받을 때나 기분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 “예은아, 생일 축하해~^^ㅎㅎ” 지난 생일, 여기저기에서 고맙게도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왔다. 정말 고마웠다. (기대했으나 안보내주는 사람도 있었기에) 그래도 역시 기억에 가장 오래 남고, 제일 고마운 건 직접 써 준 편지나 카드였다.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쓰는 동안 내 생각을 해줬다니 그에 담긴 정성이 매번 감동스러웠다. 필자도 꼭 챙겨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편지를 써주고는 한다. 챙겨주고 싶은 만큼 그 사람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 오늘날 편지는 안부나 소식을 전하는 글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넘어선 의미가 있다. 쉽게 써내려간 이메일보다 정성들여 쓴 편지를 읽노라면 그 맥락에서 그 사람의 마음은 물론 분위기, 이미지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 편지는 표현과 감동의 매개체이자 가장 진정성 있는 소통 도구가 아닐까.

기념일이 많은 가정의 달 5월, 편지 쓸 일이 참 많다. 너무 잘 쓰려고 하다보면 편지 쓰는 것도 머리 아프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준비됐다면 일단 반은 쓴 거다. 이번 기회에 선생님, 부모님, 친구 등등 고마운 사람에게 진솔한 자신의 마음을 편지지에 잘 담아 전해보자.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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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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