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씨앗 나누기] 8.여행경로 편
[여행 씨앗 나누기] 8.여행경로 편
  • 길지혜 동우
  • 승인 2011.05.18 21:10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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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아마추어 여행플래너의 제안


신라의 승려 혜초가 고대 인도를 답사하고 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1300년 만에 귀향했다.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 중국 둔황에서 이를 발견하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넘어간 이래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리크의 ‘동유기’,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힐 정도로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이다.


지난 달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은 실크로드 관련 유물 220여점과 함께 왕오천축국전의 귀향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두 달여간의 짧고도 아쉬운 만남 이 후 원본은 프랑스로 보내졌지만, 생사를 확인하고 평생의 맺힌 한을 푸는 이산가족 상봉마냥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시한부 만남’은 그야말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 혜초스님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여정의 힘겨움을 이겨냈다. 그리고 낯선 땅과 낯선 사람에 대한 다양한 풍경과 배움, 순례자로서의 감회를 기록으로 남겼다. 후세는 이로써 그 뜨거운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혜초는 시로 남겨두고 있다. ‘차디찬 눈은 얼음과 엉기어 붙었고/찬바람은 땅을 가르도록 매섭다/넓은 바다 얼어서 단을 이루고/강은 낭떠러지를 깎아만 간다’고. 이 책은 그 전부가 남아있지 않아 그의 여행경로며 자세한 것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풍경을 전해주는 유일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혜초를 두고 ‘해외여행자의 아버지’로 불러도 괜찮겠다. 여행가는 이럴 때 몸속의 뜨거운 피가 끓는다. 전인미답(前人未踏), 아무도 내딛지 않은 길을 간 사람에 대한 깊은 동경. 그리고 그들의 앞선 길을 되짚어 보는 것, 그것이 여행을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여행기라는 내용도 소개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의 여행경로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중국 광저우를 출발해 뱃길로 인도에 도착, 불교의 8대 성지를 순례한 후 육로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나 당의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까지 장장 2만km, 4년여의 대장정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특히 동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분수령에 해당되는 파미르고원은 죽음의 지역으로 불리었는데 혜초 역시 험한 산을 넘고 격류를 건너 다음 목적지로 향한 그 여정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요즘 같이 풍요로운 세상에 그의 길을 따라 다시 간다면 갈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다.

▲인도공항. 입국심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수천명의 여행자가 같은 곳을 통과해도 모두 다른 길을 떠난다.

사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그때에 비하면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지금도 오지를 탐험하는 여행가들이 많지만, 다수의 여행객들은 여행사가 알뜰살뜰하게 짜놓은 패키지여행상품을 즐기며 검색어만 입력해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풍요로운 여행환경 속에 살고 있다. ‘전문 여행플래너’도 있어 소위 최적의 맞춤 여행코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여행준비가 완벽히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경로를 짜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자 가장 행복한 고민이다. 마치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꾸는 예비부부들의 가정꾸리기 계획과 흡사하다. 경험이 없어서 설레고, 생각할 것이 많아서 복잡하지만 가정을 꾸리는 당사자는 행복하다. 수저를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방을 꾸미고, 집장만하기 위한 재무 설계까지, 어쩌면 그 소소하고도 진지한 과정이 만들어진 결과 이상으로 소중한 기억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만든 최적의 코스보다 내가 공부해서 개척한 코스가 더 짜릿할 수 있다. 왜냐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당연한 진리가 여행만큼 들어맞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탈을 꿈꾸며 떠난 여행에 효용성만 따지는 것도 실례다.


이제부터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고 싶은 여행지에 경로를 한번쯤 그려봤으면 한다. 낯설지만 지도를 펴놓고, 형광펜으로 이동경로를 색칠해나가면 여행지가 이미지로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때 활용할 것이 바로 여행 패키지 상품정보다. 패키지여행은 적어도 ‘놓치면 아쉬운 여행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에 이를 기본 메뉴로 잡아도 좋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패키지여행엔 여행자와 여행사 모두의 최선을 위한 차선, 차차선의 옵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와 경험자들의 손길이 닿은 여행코스를 바탕으로 ‘나만의 루트’를 만들라는 것이다. 누구나 다녀가는 길이 아닌 유일무이한 여행길을 만드는 것. 그것이 혜초가 몸소 실천한 일이며, 지금 내 여행이 다음 여행자에게 본이 되는 길이다.
 

길지혜(언론홍보·05졸) 동우
 미스트레블(Misstravel.co.kr)


길지혜 동우
길지혜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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