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자살
[백색볼펜]자살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05.25 08:44
  • 호수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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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지 않는 세상


◇ 지난 21일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는 노란색 물결이 일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추모 문화제가 열린 것이다. 시청 광장에 모인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를 펼쳤다. 추모 문화 공연도 하고, 봉하마을의 토산물도 팔고, 노 전 대통령의 저서를 파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보였다.
  한편 22일에는 지난 2007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고 정다빈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진다는 소식이 전해져 이목을 끌었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딸을 위로하고자 하는 정다빈의 어머니의 뜻이라고 한다.


◇ 이제는 앞에 고(故)자를 붙여야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배우 정다빈.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그들의 생을 마감하는 선택이 ‘자살’이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명을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번뇌와 고통이 있었을까.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 사람이 누구더라도 같겠지만 그 죽음의 방법이 자살이었다면 더 서글플 것이다. 물리적이거나 자연적인 이유가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이유기에, 떠난 이의 마음을 조금만 더 잡아줄 수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더 크기에 말이다. 


◇ 자살과 관련해 ‘베르테르 효과’란 말이 있다. 174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실연의 아픔을 권총 자살로 끝맺는다. 이 소설이 당시 유럽의 청년들에게 널리 읽히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같은 방법으로 모방 자살을 했다. 그래서 자살 방법까지 본뜬 모방 자살에 베르테르 효과란 이름을 붙였다.
  어느새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1744년 괴테의 문학적 영향을 넘어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살이 매우 흔한 질병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자살했다’는 소식이 이제는 별 감흥이 없을 지경이다. 자살 또 자살. 특히 올해 초에는 카이스트에서 연쇄적인 자살이 일어나며 충격을 안겨주었다. 끊이지 않는 자살, 이제 개인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될 시점이다.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 죽은 이를 기억한다는 것, 이는 반드시 망자를 추모하고 그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와 미래에 과거와 같은 비극이 다시금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각성을 촉구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선진국보다 자살 유령이 활개를 치기 좋은 환경에 놓여 있다. 사회 곳곳에서 자살을 막는 것이 아니라 카이스트처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과연 할 수 있을까. 늘어나는 자살의 원인을 한 두 개 씩 따라가다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올라도,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살맛나지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살기 싫다’는 사람은 늘어가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나도 사는 게 재미없지 않을까.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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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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