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음식인문학 - ①연재를 시작하며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 ①연재를 시작하며
  • 김주언(교양학부) 강의전담 전임강사
  • 승인 2011.08.30 20:02
  • 호수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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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음식은 어떤 욕구와 욕망의 빛깔일까

 


 먹고 마시는 일의 내력은 인류 역사의 기원과 함께한다. 점잖은 문명인의 눈에는 이 내력 깊은 인간사가 숭고하거나 장엄하기보다는 비루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음식으로 산다고 말하는 것은 천박한 일일 것이다. 먹고 싸는 힘이야말로 똥과 오줌의 존재에게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해도 그렇다. 유한한 먹거리의 지구에서 항상 허기에 찬 눈으로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동물의 절박한 욕구(need)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의 일차적인 운명이라고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벌거벗은 욕구는 문명화된 욕망(desire)의 덧옷을 껴입으면서 덧칠되고 개칠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음식의 적나라한 모습 앞에서도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 이상으로 상상한다. 오늘날 음식은 취향이나 기호로 소비되고 있는 대중 문화의 가장 부풀려진 아이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맛집’과 ‘레시피’를 알려주겠다는 정보가 차고 넘쳐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먹는 것의 수준으로 사람살이의 숨길 수 없는 남루가 너무 뻔히 간파당하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음식세상이기도 하다.

  우리 문학 속에서 음식은 어떤 욕구와 욕망의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물론 개별 작품 저마다의 희로애락의 정서와 감각 속에 버물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희로애락의 빨주노초파남보에 버물려진 음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새콤달콤하지만도 않고, 달콤쌉사름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문학은 이렇게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이슬만을 머금고 사는 허깨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한적한 식도락가의 항상 부족한 식탐의 욕망을 위해 산해진미를 진상할 생각 따위는 없다. 모든 삶은 반드시 모든 맛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어떤 맛만을 볼 수 있는 삶이란 없다. 어떤 달콤한 인생도 때로는 결코 먹을 것이 아닌 눈물까지도 삼켜야만 하는 게 삶이기도 하다. 자고로 ‘눈물젖은 빵’은 문학의 식탁에 가장 빈번하게 오르는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이것은 그러므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혀에 관한 얘기가 아닌 것이다. 대신 나는 우리 문학 속의 음식, 음식 속의 문학을 찾아다니며 어떤 허기와 갈망, 그리고 사랑과 그리움에 대해 쓰고 싶다.

  자리를 마련해준 단대신문사에 감사드리며, 귀한 지면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도록 애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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