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자석]A+와 B+사이
[주간기자석]A+와 B+사이
  • 박윤조 기자
  • 승인 2011.09.06 15:32
  • 호수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와 B+사이


예전에 시간표를 짤 때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친한 과 동기가 함께 듣자고 권유하는 ‘A+완전보장’ 예체능교양을 들을 것인가. 평소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어려운 철학교양을 들을 것인가. 예체능교양은 인기가 많아 몇 초 만에 마감이 돼,  결국 몇 시간 뒤에도 신청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던 철학교양을 신청했다. 철학 수업은 생각보다 이해하기 난해했고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관련도서를 탐독했다. 그 수업에서 공부한 철학의 가치, 철학적 사고 등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잘 잊혀 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그 어느 예체능, 취업관련 교양보다도 훨씬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대학의 교양 수업은 대학을 졸업해서도 평생 마음 속, 머릿속에 지닐 소양들을 습득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스키 초급 20만원, 중급 15만원 팝니다.” 지금껏 암암리에 이뤄지던 수강신청 뒷거래다. 그런데 이제 도가 좀 지나치다. 일부러 인기 있는 교양교과목을 여러 개 신청해 판매하려는 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마도 그 교과목을 사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건지도 모른다.


일부 학생들은 수강 인원이 제한돼 있어 인기 교과목을 듣기 위해선 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대학생들의 인식이 훨씬 심각해 보인다. 눈으로 보여 지는 결과물(점수) 에만 급급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하게 한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토익점수가 높은 학생이 토익수업만 골라 듣고, 이미 제2외국어 자격증까지 있는 학생이 중국어, 일본어회화 수업을 듣는 일도 부지기수인 현실이다. 교양수업을 단지 점수를 쉽게 받으려는 목적으로만 찾아 듣는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공지사항에 게재된 폐강교과목목록에는 중국공산당사상의 이해, 한시의 세계, 고전텍스트의 이해 등 제목만 봐도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공부하기가 번거롭고 비교적 점수받기 힘들어 보이는 교과목들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점수를 잘 주는 강의를 들으려 하는 경향은 새내기 때부터 확산되는 분위기다. 과 학년 수석을 한 1학년 학생은 “점수를 비교적 잘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인 교양과목만을 신청해 학년 수석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취업하기가 바늘구멍 뚫기인 세상, 장학금을 꼭 받아야만 하는 팍팍한 삶이 대학생들을 이러한 상황으로 몰아넣게 된 탓도 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스펙 때문에, 취업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세상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교양을 쌓는 일마저도 점수에만 연연하고, 안달이 나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앞에서 말한 철학 교양의 성적은 ‘B+’였다. 만약 예체능교양을 돈을 주고 사서라도 들었다면 ‘A+’를 손쉽게 받아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 받은 B+는 A+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대한 법이다.


박윤조 기자 shynjo03@dankook.ac.kr

박윤조 기자
박윤조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ynjo03@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