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소주와 아메리카노
[백색볼펜]소주와 아메리카노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09.07 10:24
  • 호수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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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 한 잔의 달콤함


◇ 스무 살이 되면서 먹게 된 것이 있다. 커피와 소주다. 소주는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 뒤풀이에서 친구들끼리 처음 마셔보았다. ‘윽, 이 쓴 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지? 소독약 맛 나는데.’라고 생각했다. 새내기 시절 점심 먹고 선배들 따라나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셔보았을 때는 ‘윽, 이 쓴 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지? 커피 값이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밥 먹고 커피 한 잔, 저녁에 사람들과 어울려 소주 한 잔. 안 하면 어색할 지경이다. 언제부터 쓴맛을 좋아하게 된 걸까. 사람들은 왜 이 쓰디 쓴 음료에 빠져버린 걸까. 솔직히 그렇게 맛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동안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은 적이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서다. 커피의 카페인 성분은 중추신경계, 심장, 혈관, 신장 등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오기도 하고, 카페인 성분에 민감한 사람들은 한 잔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도 한다. 하지만 카페인보다도 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은 소주의 알코올을 이길 수 없다. 미친 척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할 때, 욕하고 싶을 때, 잊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또는 모두가 기뻐할만한 좋은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정상의 신경 범위를 넘어서고자 할 때 술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술은 역시 소주다.


◇ 세상에는 많은 중독이 있다. 마약, 도박, 쇼핑, 인터넷 중독 등등. 이런 중독이 성립되기 위한 공통적인 필요조건은 ‘기분이 좋아져야한다’는 것. 기분이 좋으니까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찾게 되고, 그러다보면 곧 중독이 되어버린다. 커피 중독과 술 중독도 흔하다. 세계 인구 3분의 1이 즐겨 마신다는 커피. 굳이 집중이 필요할 때나 밤을 새야할 때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향을 음미하며 나른한 오후에 한 잔씩 마시곤 한다. 술은 사실 말하지 않아도 마셔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니, 마셔본 사람만 안다. 알딸딸해져 딱 기분 좋은 상태 말이다. 그 기분을 알면 ‘아, 술 생각난다’는 표현의 뜻을 알 것이다.


◇ 좋아하는 데는 원래가 다양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커피 한 잔, 소주 한 잔. 쓴맛을 즐기게 된 많은 이유들 가운데 그 중에서 하나를 찾자면, 우리가 사는 게 참 쓴맛이어서가 아닐까. 좋아서 열심히 하는 거면 또 모르겠는데, 대한민국에는 자기가 원치도 않은 경쟁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치열한 인생살이 속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하고, 소주 한 잔 함께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소박하지만 쓴맛 한 잔 속에서 진정한 달콤함을 꿈꾸는 걸지도….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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