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③김훈의『남한산성』과 밴댕이젓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③김훈의『남한산성』과 밴댕이젓
  • 김주언(교양학부)강의전담 전임강사
  • 승인 2011.09.20 14:22
  • 호수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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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를 토막 치면 어떠냐?

 

-전하, 빙고를 정리하다가 밴댕이젓 한 독을 찾아냈사온데, 씨알이 굵고 삼삼하게 삭아 있사옵니다. 마리 수가 넉넉지 못하오니 어명으로 분부하여 주소서.
-한 독이면 몇 마리냐?
-백여 마리 남짓이옵니다.
-종실들 처소에도 찬물이 없다고 들었다.
-세자궁에 보내고 왕손들께도 보내드리면, 선왕의 후궁들과 부마들은 어찌하오리까?
-부마는 빼더라도 후궁들에게는 보내라. 신료들도 식솔이 있으니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물량이 많지 않사온데, 신료라 하오심은 당상이옵니까, 당하까지옵니까? 무반과 외직들은 어찌 하오리까?
-호조에 의논해라.
-이미 의논하였사옵니다. 물량뿐 아니라 예법에 관계된 일이온지라, 전하께 분부 받으라 했습니다.
-토막을 치면 어떠냐?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이른바 ‘반정(反正)’으로 왕위로 오른 인조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을 무엇보다도 평생 후회했을지 모른다. 승자의 저주 같은 것이었을까. 인조는 1636년 병자년에 청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이미 1627년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몽진한 이후 또 당하는 국난이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청의 칸에게 스스로를‘신(臣)’이라 칭하고,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감당해야 했다. 임금이 송파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는데, 사로잡힌 부녀자들이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며 울부짖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조선판 쿠오바디스를 가장 무책임하게 연출한 임금 가운데 한 명으로 우리는 인조를 꼽을 수 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어가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는 과정에서부터 다시 환궁하는 시점까지를 그리고 있다. 병자년 겨울에 남한산성의 추위와 궁핍은 극도에 달한다. 성첩을 지키는 군병들은 눈비에 젖고 얼며, 보리밥 한 그릇에 뜨거운 간장국물 한 대접을 마시고 성첩에 오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창자가 얼어붙는 궁핍 속에서 밴댕이젓 한 독이 발견된 것이다. 전쟁 상황이지만 전쟁의 아무것도 주도하지 못하는 임금은 남한산성 행궁 안에서 밴댕이젓 한 독에 대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밴댕이는 젓갈로 곰삭아 있지 않을 때에도 커봤자 몸길이가 15㎝ 안팎의 미물이다.
 
-토막을 치면 어떠냐?
-밴댕이는 작은 생선이오니, 토막을 쳐서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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