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 익어가던 양고기 꼬치 한 점과 맥주 한 잔
노릇노릇 익어가던 양고기 꼬치 한 점과 맥주 한 잔
  • 이승제 기자
  • 승인 2011.09.20 22:10
  • 호수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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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여행의 회포를 풀다

연길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천직이 여행가는 아닌지, 며칠간의 일정에 몸은 녹초가 됐다. 곧장 침대 속으로 들어가 곤한 잠을 자고 싶었지만, 연길에서 추억을 더 새기기로 했다. 안따거(따거는 ‘형님’이라는 중국어다. 우리는 가이드 안학림 씨가 나이차도 별로 나지 않고, 친근하여 그렇게 불렀다.)와의 이별도 달갑지 않았지만 곧 있으면 연길을 떠난다는 게 서운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조원들이 양고기 꼬치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안따거는 연길의 사대음식인 명태, 개고기, 냉면, 양고기 꼬치를 자랑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양고기 꼬치에 대한 사랑을 적극 표현했던 터였다. 아마 조원들이 그런 안따거를 생각해 제안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우리는 ‘양고기 꼬치 시식단’을 모았다. 짐을 풀고 씻지도 못한 채 나온 19명의 일행이 택시를 타고 연길 시내서 소문난 양고기 꼬치 집을 찾았다.

시식단이 큰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잔을 돌리고, 맥주를 따는 사이 양고기 꼬치가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져 갔다. 연변의 대표맥주인 ‘빙천맥주’를 따르고 ‘깜빼이’(중국말로 건배)를 외쳤다. 잘 익은 양고기 꼬치는 그다지 향내가 강하지 않고, 고소하면서 달짝지근했다. 양고기 꼬치와 소고기 꼬치를 다발로 구웠지만, 손은 자꾸 양고기 꼬치로 향했다. 한국에 가서도 즐겨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주위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니 한국 양고기 꼬치의 맛은 연길의 그것보다 한참 뒤진다고 한다. 우리는 연길표 양고기 꼬치와 맥주를 먹으며 이틀간의 연길 여행의 회포를 풀었다. 멋모르고 공안소를 찍다 카메라를 압수당할 뻔했던 아찔했던 순간이나 버스에서 명태포를 뜯으며 반주를 들이켰던 때를 회상했다. 그 밖의 아주 개인적인 얘기들. 예를 들어 꿈에 대한 이야기나 한국에 오면 극진히 대접하겠다며 안따거에게 했던 조원들의 장담이 술자리의 흥을 돋웠다.

적당히 배가 두둑해지고 취기가 오르니 안따거가 버스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연길에는 처녀가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안따거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 곳곳마다 조선족 여인들을 찾았지만 볼 수 없었다. 연길에 사는 조선족 여인을 본 곳은 천지 답사를 앞두고 숙박했던 5성급 호텔이 전부였다. -연길에 처녀가 없다고 한 말은 사실이에요? “네. 사실입네다. 여자가 없십네다. 모두 돈 벌러 다른 나라에 갑네다.” 여느 김밥 집에서 볼 수 있는 조선족 여인네들이 생각났다. -돈은 많이 벌고 오나요? “보통 5~6년 돈 벌고 오는 데 많이 벌어오지는 않십네다. 가족들 돌보는 데 쓰고, 와서 집사고 땅 사면 다 써버립네다. 그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5~6년 일합네다. 보통 타지에서 일하면 잠도 잘 못자고, 밥도 못 챙겨 먹십네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그렇게 골병나 죽십네다. 일하다 죽어요.” 안따거의 대답에 중소형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하던 젊은 조선족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중소형 마트가 대형 마트로 넘어가자 아무런 말없이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조선족이었다는 게 아주머니가 그만 둘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다행히 며칠 후 동료들을 보러 온 아주머니가 새 일자리를 구했다고 전했다. 동료들은 그런 아주머니를 축하해주며 저녁 술자리를 마련했다. 대형마트는 조선족 사람인 아주머니를 이방인 취급했지만, 국적과 민족에 대한 구분은 동고동락한 동료들에게 중요치 않았다.

연길에서 북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꿈을 꿨다. 시간을 꽤나 거슬러 올라간 꿈이었다. 코흘리개 울보였던 어렸을 적 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동네 아이들의 놀림을 당하고 있었다. 체구가 작고 지금보다 용기도 덜 했던 시절에 아이들의 공격에 자주 그랬었던 나였다. 그 때 누이가 나타났다. 친형제보다도 더 애틋한 정을 나눴던 동네 누이였다. 누이는 아담하지만 강단한 몸으로 나를 지켜줬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이 누이에게 향해도 누이는 나를 달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기억 저편에 있는 누이를 우연하게도 연길을 떠나며 재회했다.

무슨 연유로 내가 연길에서 누이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한민족이라서 그리했는지. 아님, 낯선 대륙에서 느꼈던 친숙함 때문인지.


▲연길표 양고기 꼬치를 먹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태권이 형, 사진 찍어줘서 고마워요.
▲연길 서 만난 꼬마 아이. 어렸을 적이 떠올라 찰칵.

이승제 기자
이승제 기자

 redhan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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