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④백석의 「古夜」와 명절 음식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④백석의 「古夜」와 명절 음식
  • 김주언 강의전담 전임강사
  • 승인 2011.09.27 17:51
  • 호수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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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그것은 마침내 되찾은 유년”

 

백석을 자야 부인의 애인 정도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길상사가 된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증했다는 그 자야 부인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흰 바람벽이 있어」)는 시인을 우리는 스캔들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백석의 시편들 가운데는 한국어로 씌어진 최고 절정의 절창에 속하는 작품들이 많다. 특히 음식과 관련된 시편들이 상당수를 차지해 백석의 시편들은 가히 음식문학의 보고라고 할 만한 것이다.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백석 시편에 나타나는 음식의 종류가 무려 150종에 이르며 그의 소작 총 95편 중에서 음식물이 나타나지 않는 작품은 불과 28편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백석의 음식 시편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백석의 시편에 등장하는 음식은 대부분 유년기 회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년이란 무엇인가? 유년기 회상은 적어도 과거 지복의 시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퇴행의 고집 같은 것은 아니다. 백석의 음식 시편들은 유년을 심층적으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온당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개인사적으로 보면 유년은 성장의 미숙 단계에 불과하지만, 바타이유 같은 이는 “문학, 그것은 마침내 되찾은 유년”이라고 말한다. 유년은 타산적인 이성에 근거하지 않는 쾌락원리가 지배하는 시기로 이 시기 자체가 시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백석 음식 시편의 유년은 이런 유년의 의미에 문명사적 함의가 포개져 있다. 백석의 유년은 아직 근대로 훼손되지 않은 시절이다. 따라서 그의 유년 지향은 반(反)근대 지향이기도 한 셈인데, 여기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는 이런 것이다. 즉, 삶의 시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의 현재 삶이 정녕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저 잊지 못할 음식이 차려져 있는 유년이란 혹시 우리가 마침내 돌아가야 할 오래된 미래가 아닌가? 이것이 백석 음식 시편들이 머금고 있는 역사철학적 함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저 명절의 송편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그리움의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어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 「古夜」 중에서

김주언 강의전담 전임강사
김주언 강의전담 전임강사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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