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사요취선
38) 사요취선
  •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1.09.27 18:13
  • 호수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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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사요취선(史要聚選)』


-간신이 나라를 농락하니 충신은 분하여 피눈물을 흘린다-


  지금처럼 조선시대에도 일반인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출간한 상업용 책이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조선의 지식층은 이른바 ‘방각본(坊刻本)’이라고 불리는 상업용 출판물을 사서 읽었다. 방각본은 민간 출판업자가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책을 말하는데, 책을 인쇄하여 파는 곳을 서방(書坊)·서사(書肆)·서포(書鋪) 등으로 불렀다. 관청에서 찍어낸 활자본은 간행 부수가 한정되어 관료 등 특정한 사람들만 읽을 수 있었고, 일반인에게 보급하기 위해 나라에서 펴낸 책도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웠다. 이에 민간이 책을 찍어 낼 수 있도록 허용하였는데, 이들 출판업자에 의해 목판으로 찍어 간행한 책이 바로 ‘방각본’이다. 당시 방각본 중에서 널리 유행한 책으로는 『사요취선(史要聚選)』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전이채·박치유가 1799년에 간행한 방각본으로 권이생(權以生)에게 요청하여 펴낸 것이다. 권이생의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제사상록(諸史詳錄)』과 『역대회령(歷代會靈)』에서 취하였다. 『제사상록』은 반고(盤古) 이하 중국 왕조의 계통과 인물들의 사적인데 아직 보지 못한 내용이 많다. 『역대회령』은 간행본에 틀리거나 빠뜨린 것이 많다. 분류와 차례는 『회령』을 따르고 가언(嘉言)과 이적(異蹟)은 『회령』에서 많이 채록하였다”고 한다. 『제사상록』은 태안 현감을 지낸 조항진(1738~1803)이, 『역대회령』은 진사 강위신(1712~1765)이 지은 것이다. 권이생은 이를 대본으로 수정하고 보충하였다. 전국시대는 『열국지』와 『국어』를 가지고 보충하였고 송나라의 사실은 주희의 『명신록』에서 취하였다고 한다. 권이생은 “빨리 보기에 편리하도록 짧은 문장을 모으고 적절한 문구를 뽑았다. 그래서 『사요취선』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중국사의 요점을 뽑아 정리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박치유, 전이채 두 분이 문단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판각하여 세상에 간행하고자 하여 나에게 기초하도록 청하였다”고 하였으니 권이생이 원고 청탁을 받고 집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요취선』은 중국사의 주요 인물들을 제왕(帝王), 장수(將帥), 성현(聖賢), 이단(異端), 간흉(奸凶) 등 29개 분야로 나누어 간략하게 서술하였으니 일종의 인물 역사 사전이다. 항목의 내용은 먼저 수록 인물의 자와 호, 출생 관계를 밝힌 다음, 본문은 정사(正史) 위주가 아니라 비화(秘話)와 이적(異蹟)을 중심으로 엮었다. 이런 점 때문에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에 귀양 갔을 때에 보낸 편지에서, “내가 여기 처음 왔을 적에 유학의 경전을 보여 주고 문장의 이치를 설명해 주었는데 모두가 당황만 하고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마치 모기부리가 철벽을 만난 것과 같더라. 혹 와서 묻는 것이 있다면 이는 『사요취선』 따위였다”고 하여 『사요취선』을 흥미 위주의 책으로 낮게 평가하였다.

  첫 항목「제왕」은 반고(盤古)에서 명나라까지 중국 제왕들을 정리하였는데 특기할만한 점은 남송의 마지막 두 황제와 남명의 세 황제를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록 오랑캐에게 멸망당했지만 여전히 송·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나아가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굴복시킨 청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상국(相國)」편에 송의 재상 여몽정을 수록하였는데, “그는 사방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러 찾아오면 반드시 인재가 누구인지 물어서 분류해 두었다가 조정에서 현자(賢者)를 구하게 되면 그중에서 선발하니 문무관이 모두 적임자로 채워지게 되었다”고 하였다.「절의」편에 방효유(1357~1402)를 기록하였는데, 그는 왕위를 찬탈한 명의 영락제를 거부하다가 자신과 일족 800명이 죽음을 당했다. 끝에 방효유의 절의시를 수록하였는데, “간신이 흉계로 나라를 농락하는구나. 충신은 분하여 피눈물을 흘린다”고 하였다. 『사요취선』은 1799년에 처음 간행된 이후 1823년, 1856년, 1865년 등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이렇듯 『사요취선』은 조선후기에 가장 인기 있던 책 중의 하나로 당시 지식인에게 널리 보급되어 이들이 중국사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원)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kim996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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