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황정경(黃庭經)』
39) 『황정경(黃庭經)』
  • 김철웅(동양학연구원)
  • 승인 2011.10.04 18:33
  • 호수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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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황정경(黃庭經)』
-어금니가 가을 잎처럼 저절로 떨어지네- 

   권근(1352~1409)은 이빨이 빠지자 지은 시에서, “젊어서 청춘만 믿고 『황정경』을 배워 수련하는 것에 마음 쓰지 않았더니 머리가 희어지자 어금니가 가을 잎처럼 저절로 떨어지네.”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조(正祖)는, “매일 빗질을 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어서 근년에 비로소 빗질을 시작했더니 머리와 시력이 맑고 시원해졌으며 잠이 저절로 왔다. 『황정경』에, ‘머리칼은 응당 많이 빗어야 한다’고 하였고 섭생가(攝生家)들은 머리 빗기를 매일 천 번씩 하면 머리칼이 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황정경』은 불로(不老)의 방법을 적은 책이다. 『황정경』에는 “이 경을 한 번 외우면 정신이 고요해지며 뜻이 공평해진다. 만약 마음에 곤란한 병이 있는데 이것을 읽으면 금방 죽게 될 것도 역시 낫는다. 만약 오염에 의해 앓게 되면 목욕하고 좌우에 향을 태우고 한번 경을 읽으면 백병(百病)이 제거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려 때의 유명한 문인인 이규보, 이색 등은 물론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 책을 즐겨 읽었다.

   권근(1352~1409)은 이빨이 빠지자 지은 시에서, “젊어서 청춘만 믿고 『황정경』을 배워 수련하는 것에 마음 쓰지 않았더니 머리가 희어지자 어금니가 가을 잎처럼 저절로 떨어지네.”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조(正祖)는, “매일 빗질을 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어서 근년에 비로소 빗질을 시작했더니 머리와 시력이 맑고 시원해졌으며 잠이 저절로 왔다. 『황정경』에, ‘머리칼은 응당 많이 빗어야 한다’고 하였고 섭생가(攝生家)들은 머리 빗기를 매일 천 번씩 하면 머리칼이 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황정경』은 불로(不老)의 방법을 적은 책이다. 『황정경』에는 “이 경을 한 번 외우면 정신이 고요해지며 뜻이 공평해진다. 만약 마음에 곤란한 병이 있는데 이것을 읽으면 금방 죽게 될 것도 역시 낫는다. 만약 오염에 의해 앓게 되면 목욕하고 좌우에 향을 태우고 한번 경을 읽으면 백병(百病)이 제거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려 때의 유명한 문인인 이규보, 이색 등은 물론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 책을 즐겨 읽었다.

 실학자인 홍대용(1731~1783)은 『담헌서』에서 “『능엄경』은 마음 수양함에 필요하고 『황정경』은 원기 보호하는데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정약용(1762~1836)은 예천의 반학정(伴鶴亭)에서 지은 시에서, “천문서를 읽고 난 뒤 일이 없어 『황정경』 첫째 장을 한가로이 옮겨 쓰네”라고 하였다.  『황정경』은 「내경(內景)」과 「외경(外景)」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서 ‘황’은 중앙의 색이고 ‘정’은 사방의 가운데를 뜻한다. 그리고 ‘내’는 심(心)이고 ‘경’은 모양(象)으로 몸을 이루는 피, 살, 뼈, 오장육부를 가리킨다. 따라서 『황정내경』은 사람의 중심인 마음과 몸의 원리를 설명한다. 상권은 상청(上淸), 심신(心神), 호흡(呼吸) 등 36장으로, 하권은 상부, 중부, 하부 등으로 되어 있다. 「상청」장에서 “삼청(三淸)은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이 있다. 삼청의 가운데는 큰 성인이 거주하는 곳이다”라고 한다. 서울의 삼청동은 바로 『황정경』의 삼청에서 유래한 것이다. 「백곡」장에서, “모든 곡식의 수확물들은 땅이 천기를 갈무리하여 생산한 음정(陰精)이니, 달고 맵고 쓰고 짜고 신 맛들은 겉으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맛에 취하게 하지만 사실은 정기(精氣)를 혼탁하게 한다. 음정의 결정체인 오미(五味)에 취하게 되면 끝내는 혼백은 흩어지고 무너져 버린다. 마땅히 오미의 음기를 절제하고 원기를 충실히 쌓아 가야 한다”고 하여 음식의 섭취를 절제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황정경』은 단순히 도교의 방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도교 의학을 밝힌 책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황정경』은 의학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예로 『동의보감』을 들 수 있다. 『동의보감』의 첫 편명인 「내경」은 바로 『황정경』에서 따 왔으며, 『동의보감』의 내용은 『황정경』을 널리 인용하였다.


  『황정경』은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왕희지(307~365)가 써서 유명해지고 널리 전파되었다. 왕희지는 거위를 좋아했는데, 한 도사(道士)가 여러 마리를 가졌으므로 왕희지가 요구하니 도사는 『황정경』을 써 주면 바꾸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황정경』을 써 주고는 거위와 바꾸어 돌아왔다고 한다. 「외경」의 서문에, “왕희지는 글씨에 능해서 이 책을 잘 써서 자못 흥미가 있었으나 후대인은 다만 그 글자에만 미혹되어 참다운 법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황정경』은 단순히 도교의 술서(術書)로만 평가해선 안된다. 「심전(心典)」장에서, “생각 하나, 행동 하나라도 전전긍긍하여 매사를 살펴서 한다면, 덕은 날로 쌓여서 마침내는 도(道)를 완성할 수 있다. 마음을 늘 바르고 맑게 하면 본성은 밝게 빛을 발하게 되고 마침내는 공을 이루게 된다.”고 한 것이 『황정경』이 널리 유행한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왕희지가 쓴 『황정외경』은 석각되어 전해졌고 그 탁본을 복각한 것이 후대에 널리 전해졌는데 우리 대학에도 이 복각본의 일부가 소장되어 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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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996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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