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성경직해광익』
42) 『성경직해광익』
  • 김철웅 연구원
  • 승인 2011.11.08 18:40
  • 호수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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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성경직해광익』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칼보다도 날카롭다

 

 

 

 


  1801년 2월, 의금부로 압송된 최창현은 나졸들의 매질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천주(天主)를 원수로 삼고 오랑캐의 도(道)로 보겠다"는 배교 의사를 밝히고 말았다. 그러나 이틀 뒤에 “전날 천주를 배반했던 것을 통절히 뉘우치면서 예수를 위해 죽고자 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죄인 최창현은 사학(邪學)에 고혹되었고 스스로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했으며, 요사한 말과 글을 퍼뜨리고 다니면서 대중을 미혹시켰다는 사실을 자복 받아 사형하였다.”고 『순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최창현은 신유박해(1801년) 때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핵심 인물이었다. 최창현은 외국과 통역 업무를 맡아보던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중국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이벽 등에게 세례를 주면서 천주교를 전파했을 때 입교했다. 황사영 백서에서 그의 사람됨을, “외모가 준수하고 말수가 적으면서도 정의로워, 누구나 의혹이 생기거나 곤란을 당하거나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할 때 그의 말 두어 마디만 들어도 시원해졌다. 강론도 자세하고 명백하며 재미있어 누구나 즐겨 들어 싫증내지 않으며 그의 말이 마음 속에 들어가 믿음이 깊어졌다.”고 칭송하였다. 그는 역관답게 한문으로 된 천주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 열중했다. 다블뤼 주교는 “최창현은 평상시의 근면함으로 조선에 들어온 모든 천주교 서적들을 베껴 썼는데, 이 일은 그가 항상 몰두하는 일이어서 천주교인들은 서적을 구하려면 큰 상점에 문의하듯이 그에게 말만 하면 될 정도였다”고 하였다.

  『순조실록』에서, ‘요사한 말과 글을 퍼뜨리고 다니면서 대중을 미혹시켰다’는 최창현의 죄목은 그가 번역한 『성경직해광익』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중국에서 한문으로 간행되었던 『성경직해(聖經直解)』와 『성경광익(聖經廣益)』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성경직해』는 예수회 신부 디아즈(1574~1659)가 1636년에 북경에서 간행한 복음 해설서이고, 『성경광익』은 마이야(1669~1748) 신부가 1740년에 펴낸 복음 묵상서였다. 최창현은 한문본 『성경직해』, 『성경광익』를 번역하고 이를 다시 『성경직해광익』으로 묶었다. 최창현이 이를 번역한 목적은 첫째, 한문을 모르는 아녀자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고 둘째, 모든 교우가 한 믿음으로 같은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종의 신앙 교과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경직해광익』은 성서 본문과 그에 대한 설명, 신앙생활과 연결한 강론, 그날 말씀에 따라 실천할 내용, 기도로써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부분 등으로 짜여져 있다. 「강림후제2주일」에서, “이 세상 물건은 본래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선용하면 좋은 것이 되고 악용하면 나쁜 것이 됩니다. 그것이 마치 올라가는데도 쓰고 내려가는데도 쓰는 사다리와 같아서 우리 죄를 피하고 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위하여 하십시오”라고 하였고, 「주님공현대축일후 제2주일」 복음의 잠에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를 소개하였다.

  이 책은 1780년대에 한글로 번역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이후 끊임없이 필사되어 전해지면서 예배용 전례서로서, 그리고 묵상서로 신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의 천주교도에 대한 문초 기록을 보면, 천주교도들은 이 책을 거의 외울 정도로 탐독하였고 그 가르침대로 살고자 애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은밀한 예배와 극히 제한된 교리 교육 속에서 이 책을 통해 신도들은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라고 하였다. 천주교도들은 이러한 말씀을 되뇌이며 기도하였고 이를 통해 말씀의 생명력을 충만히 받아 순교의 문턱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다. 『셩경직해광익』은 조·불(朝佛) 수호조약(1886년)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셩경직해』(총9권)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우리 대학에는 필사본과 활자본이 소장되어 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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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996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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