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멍
[백색볼펜]멍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11.15 14:41
  • 호수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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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지 말자

◇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이란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생각을 어찌해야 남에게 오해 없이 충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심은 하지 않는다. 어찌하면 좀 더 멋있게 폼 나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한다. 여기서 베껴오고 저기서 훔쳐와서 이리저리 얽어 놓고 보니, 글은 글인데 내 말은 하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글이 되기 일쑤다. 글쓰기는 ‘어디에 담느냐’ 보다 ‘무엇을 담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이를 지키기가 그리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내실보다는 외형에 집중되어 있다. 좀 더 멋있고, 폼 나게 보이고만 싶다.


◇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너무도 잘 잔 지난 밤, 기분 좋게 눈을 뜬 아침. 엄마 품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서 정말 나가기 싫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 날의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일어나기 싫어서 침대 위를 뒹굴 거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해야 할 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어리석은 질문 앞에 대면하기도 한다. 딱히 나오는 정답은 없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다.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무얼 하면서 보낼 것인가. 오늘의 대학생, “남들이 다 듣는 수업 나도 들어야지, 남들이 다 하는 과제 나도 해야지.” 마냥 놀고만 있을 배짱은 그다지 없다.


◇ 가끔 조심성 없이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넘어질 뻔 한다. 특히 책상 모서리 같은 데에 무릎 박을 때가 제일 아프다. 다치는 게 항상 예기치 못하는 상황 속에서 생기는 일이지만, 실내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다가 부딪히는 거라 그런지 너무 아프다. 심지어 종종 멍이 들기까지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 갑작스럽게 멍이 든 것과 같다. 하루하루를 습관처럼 지내다보면 누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들어질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도 못하다가 부딪히듯 그런 순간은 문득 다가온다. 멍이 든 곳은 누르면 아픈데,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왜 힘들어지는지 고민하고 이유를 찾다보면 상당히 골이 아픈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역시 ‘시간이 약이다.’ 이 말은 정말 명언이다. 문제는 완치가 힘들다는 데 있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다가는 곪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 대학생이란 그릇에 4년 동안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남들이 갖춰놓은 구색 안에서 우리는 요모조모 주위를 둘러보며 비슷해져 가는 게 아닐까. 모두가 따라가고 있는 것만 같다. 멋지고 화려한 글보다 진정(眞情)이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이 긴 장편 소설과 같다면 우리의 삶에 ‘진정’을 담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보이지 않는 알맹이를 가꾸는 노력이 우리는 부족하다. 멍하다. 이미 지나온 시간 동안 내 삶의 그릇에는 무엇이 담긴 걸까. 연암 박지원 선생이 말하기를, “비슷한 것은 가짜”랬다. 진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멍 때리지 말고, 퍼렇게 맺힌 피를 순환시켜보자.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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