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⑨ 백석의 「선우사」와 가재미(下)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⑨ 백석의 「선우사」와 가재미(下)
  • 김주언(교양학부) 강의전담 전임강사
  • 승인 2011.11.15 14:43
  • 호수 1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은 누구와 밥을 먹는가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선우사」 중에서
 
  시의 제목 「선우사(膳友辭)」에서 ‘선(膳)’이란 ‘반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우’란 ‘반찬 친구’, 즉 반찬과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나’의 반찬 친구는 많지 않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반찬과 친구가 되어 “흰밥과 가재미와 나”를 묶어 ‘우리’라고 칭하고 있지만, 실상 반찬은 가자미(‘가재미’는 북한말이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단출하고 쓸쓸한 친구 사이가 아닐 수 없다.

   시의 제목 「선우사(膳友辭)」에서 ‘선(膳)’이란 ‘반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우’란 ‘반찬 친구’, 즉 반찬과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나’의 반찬 친구는 많지 않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반찬과 친구가 되어 “흰밥과 가재미와 나”를 묶어 ‘우리’라고 칭하고 있지만, 실상 반찬은 가자미(‘가재미’는 북한말이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단출하고 쓸쓸한 친구 사이가 아닐 수 없다.


  가자미는 어떤 생선이기에 백석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일까. 시인은 「가재미·나귀」라는 산문에서도 “동해(東海)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고 적고 있는데, 시인의 고향 북쪽에 한정해 보자면 가자미는 함경도의 대표적인 젓갈류인 가자미 식해의 주재료이기도 하고, 함흥 냉면의 고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생선 종류의 하나로서의 이런 특질이 이 시에서의 가자미의 본질은 아니다. 이 시에서 가자미의 본질은 무엇보다 가자미는 광어나 우럭 같은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가난한 이의 밥상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비근하고 하찮은 생선이 「선우사」의 주인공인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자미라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비근한 생선이 가장 비범한 가능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백석에게는 거창하고 휘황한 것에 휘둘리는 일체의 허위의식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백석의 가능성일진대, 이 가능성은 기량이나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인간 자질의 문제라는 점에 우리는 방점을 찍자. 당신은 어떤 친구와 같이 밥을 먹는가. 혹 반찬뿐만 아니라 사람도 ‘하찮은 것’을 따로 분류해놓고 단 한 끼도 이런 부류와는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백석의 「선우사」를 권하고 싶다. 하찮은 것을 벗하는 백석, 즐기는 평양냉면 메밀면의 맛을 ‘슴슴하다’고 적는 백석,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백석의 모습이다. 하찮은 것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