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43)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 김철웅 동양학연구원
  • 승인 2011.11.22 13:39
  • 호수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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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착한 행실을 드러내고 의로운 행동에 감동하는 이야기-


  채제공(1720∼1799)은 “소설 읽기에 빠진 부녀자들이 비녀와 팔찌를 팔고 가산을 탕진해 버릴 정도로 경쟁적으로 빌려 읽었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서적 간행은 국가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음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책값은 백성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비쌌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문 필사자가 베껴 쓴 책을 빌려다 보았다. 채제공은, “쾌가(거간 쾌 家)는 소설을 깨끗이 베껴 쓰고 무릇 빌려 주는 일을 하는데 그 값을 받아 이익으로 삼았다”고 책 대여점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소설은 한평생을 집안에서 갇혀 지내야했던 조선 여성들에게 생활의 활력소이자 유교의 속박에 억눌린 심사를 해소하는 탈출구였다. 당시 인기를 끄었던 소설 중에서 단연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은 여성 독자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 소설은 조성기(1638~1689)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것이다. 조재삼의 『송남잡지』에 선조(先祖)인 조성기가 어머니를 위해 『창선감의록』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성기의 『행장』에도 어머니를 위해 소설을 창작했다고 하였다. 이 소설은 한문본과 한글본을 합쳐 약 60여 종이 넘는 이본이 전해지고 있으니 조선 후기에 가장 인기 있었던 소설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제목도 다양하여 『창선감의록』 외에 『화문충효록(花門忠孝錄)』? 『화씨충효록(花氏忠孝錄)』? 『화형옥전(花荊玉傳)』 등으로 전해온다.


  『창선감의록』은 14회의 장편 소설로 명나라 가정(1522~1566) 시기에 화씨(花氏)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화욱에게는 심씨? 요씨? 정씨 등 세 부인이 있었는데? 심씨와 아들 춘은 화욱이 정씨 소생의 진을 편애하자 그를 미워한다. 화욱이 죽자 춘은 범한, 장평 등과 어울리며 음주 가무를 일삼고 현숙한 부인 임씨를 내쫓고 첩 조씨를 정실로 삼는다. 범한과 조씨는 결탁하여 화진을 모함하여 관직을 잃게 하고 화진의 부인 남씨를 독살하려 한다. 남씨는 여승 청원에게 구조되고? 헤어졌던 부모를 만나게 된다. 화진은 범한과 조씨의 계략으로 심씨를 죽이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데? 도어사 하춘해가 그의 결백을 알고 돕는다. 화진의 부인 윤씨는 장평의 계략으로 엄숭의 아들 엄세번의 첩으로 들어갈 위기에 처하는데? 그의 쌍둥이 동생 윤여옥이 대신 여장을 하고 들어간다. 윤여옥은 엄숭의 딸 월화의 도움으로 빠져나와 과거에 급제한다. 화진은 유배 가 있다가 외적의 침입하자 백의종군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 누명을 벗고 진국공에 봉해진다. 그리고 심씨와 화춘은 과오를 뉘우치게 되어 화씨 집안은 평안해진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제목과 같이 “착한 행실을 드러내고 의로운 행동에 감동하는” 이야기로  화씨 집안의 갈등과 간신 엄숭의 행실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사건과 등장 인물이 다양하여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소설의 인기와 달리 저자 조성기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생 초야의 선비로 살았다. 『숙종실록』에, 그가 “궁벽한 마을에서 문을 닫고 있은 지 50년이었다”고 하였고,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許生傳)』에서는, “조성기는 적국(敵國)의 사신으로 보낼 만하건마는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당대의 학자들에게 칭송을 받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있었다. 정조는 『일득록』에서, “조성기는 웅대하고 해박한 논변으로 당세를 압도하였다.”고 하였고, 김창협(1651~1708)은, “생각이 깊고 식견이 환하여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고 지식을 높이는 공부에 있어서 터득한 것이 실로 깊었으니, 근래의 선배들 중에 찾아보더라도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숙종실록』에 처사(處士)로 죽은 그를 특별히 기록하여, “박식하여 두루 관통하였다. 질문하는 이가 있으면 응답하기를 메아리처럼 하여 물 흐르듯 궁함이 없었고, 재주 있는 이와 어진 사람을 끌어올리기를 즐거워하였다.”고 하며 그의 죽음을 애석해 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원 연구전임강사)

김철웅 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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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996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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