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 13. 다른 10대의 탄생, 김해완
행복을 찾아서 - 13. 다른 10대의 탄생, 김해완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1.11.22 23:22
  • 호수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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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 행복

행복을 찾아서 - 13. 다른 10대의 탄생, 김해완

살아있다는 느낌이 행복

“공부를 통해 당당하게, 나를 책임지고 싶다”

▲『다른 십대의 탄생-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그린비 , 2011)

대안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칭 ‘중졸백수’ 김해완(19세) 양.

올 초에 김 양이 쓴 『다른 십대의 탄생-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그린비 , 2011) 이 책은 열여섯에 학교를 나온 중졸 백수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만나 그곳에서 어른 백수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과 밥을 짓고,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글 쓰고 고민하고 혼나고 성장한 기록을 담았다.

그저 십대가 써서 화제가 됐다고 하기에는 책의 인문학적 깊이가 상당하다.“십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공부를 통해 내적인 힘과 중심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김 양. 인문학을 읽는 소녀, 김해완 양을 만나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자퇴를 결심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사실 ‘자퇴’란 과정에는 딱히 말할 서사가 없다. 오히려 자퇴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결심이 있어서 자퇴를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삶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자퇴를 했다.

학교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수 백가지였고 나와야 하는 이유도 수 백가지였다. 어떤 당위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몸이, 내 시절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자퇴 이후에 학교 밖에서 이루어졌던 내 삶의 양상이 너무나 그 전과 달라졌고,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퇴가 아니다. 자퇴를 안 해도 학교 안에서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다.

▲이번 인터뷰가 몇 번째인가? 세상의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세어보지 않았는데, 이번 인터뷰가 한 열 번째 쯤 되는 것 같다. 부담스러운 면도 있고  좋은 면도 있다. 부담스러운 이유는 자꾸 나의 의도와 다르게 나를 조명하려는 시선이 있다는 거다. 기사가 나가는 것만 봐도 나를 전혀 딴 판으로 해석 한다. 예를 들면 자퇴를 되게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 학교를 그만둔 것에 대해 ‘엄청나게 뭔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요점은 자퇴가 아니라 ‘이후에 삶이 완전히 다르게 펼쳐졌다’ 는 것이다. 그런데 ‘자퇴를 함으로써 다른 삶이 펼쳐졌다’라든지, 마치 엄청난 인물인양 부각시키려는 게 부담스럽다.

반대로 좋은 이유는 친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책을 내고 인연의 장이 넓어졌다. 몰랐던 사람이 연구실에 찾아온다거나 그 들과 친구가 되는 것들이 가능해졌다. 그런 점이 좋다.

▲ 대학거부 선언이 줄잇고 있다. 해완 양의 상황과 다르긴 하지만, 이런 현상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대학 거부선언이 계속 되는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학을 거부했으면 그 이후의 삶이 있어야 한다. 대학을 거부한다고 어떤 정당성이나 좋은 삶이 보장 되는 게 아니다. 대학을 거부했으면 미련을 버리고 대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지대에서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어 다른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최종적인 판가름은 ‘누가 얼마나 더 생각하느냐’이다. ‘대학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와 같은 가시적인 것으로는 판단 할 수 없다. 이런 선언들을 통해서 ‘도대체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못하고 그냥 ‘저게 옳으냐 그르냐’, ‘맞냐 아니냐’는 이분법에만 갇히면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의 깊이나 힘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민해서 대학거부선언을 하는 게 훨씬 낫다고 본다. 거부를 해서 낫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민의 깊이와 토대에 의미가 있다는 거다.

▲책에서 보나, 인터뷰 영상에서 보나, 전화 통화를 하면서 보나 ‘당당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 당당한 사람은 ‘빈털털이’ 여도 당당한 사람이다. 세상은 당당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뭔가를 가지라고 한다. 안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을. 그러니까 안전한 걸 당당하다고 생각 하는 것 같다. 안전한 지대에서 보호가 되어야 당당하게 고개 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러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개인의 내면은 불안으로 침잠하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

범박하게 예를 든다면, 당당하게 살려고 취업 잘 되는 과를 선택했는데, 세상이 그 사이에 바뀌어 그 과가 안 된다고 생각을 해봐라. 안전 속에서 얻는 자신감이나 당당함은 그 안전한 토대가 와해되는 순간 끝난다. 그런 건 당당함이나 자신감이 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독립하고 싶은지.
독립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십대라는 이름 안에서 가두고 있는 것들에 대한 탈출’이 우선적인 독립이었다. 인정을 받으려고 독립한 게 아니다. 사람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는 독립을 하고 싶었다. 쉽게 말하면 자립이다. ‘독립’이 혼자서는 개념이라면 ‘자립’은 관계 속에서 서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관계 속의 독립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살고 싶다. 쾌락처럼,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해 갖는 방향성에 얽매이지 않으며 독립하고 싶다.

▲이제 곧 있으면 해완 양도 스무 살이 된다. 스무 살의 해완은 열아홉의 해완에 대해 후회되는 게 있을지.
후회를 하는 사람은 과거의 자신에서 떠나오지 못한 사람이다. 후회를 해도 지금 나에게 후회를 해야지 왜 과거의 나에 대해서 후회를 하나. 그것은 내 잘못을 과거의 나에게 덤터기 씌우는 게 아닌가. 나는 그동안 원했던 삶을 꾸려왔다. 만약 내가 취직을 해야 하는 데 중졸이라 사람들이 무시한다. 그렇다면 그 때 과거에 나에 대해 후회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새롭게 살 것인가’를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다. 사실 이미 후회하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 책도 냈고. (웃음) 후회하면 어떡하나. 책에 거짓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앞으로 한 십년은 ‘그냥’ 공부를 하는 사람. 공부가 내 길이 아니더라도 십년은 해야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묻는다면 끝까지 멈추지 않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핑계를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 누구도 자기 삶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느냐, 마느냐’ 밖에 없는 것 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고. 이십대가 되면 이루기보다는 깨지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이십대는 원래 구르는 나이지 않은가. 내 자신이 이 길을 끝까지 멈추지 않고 갔으면 한다.


▲해완 양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 안락함 같이 행복에 대한 추상적인 가치를 드는 게 아니고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고, 존재하고 있구나’하는 순간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삶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불편할 수가 있다. 왜냐면 살아있다는 느낌은 자기가 계속 변할 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와 굉장히 다른 것을 마주쳤을 때, 그것들이 서로 찌그럭찌그럭 하면서 부딪힐 때 느끼는 거다. 똑같은 것끼리 만나면 아무 것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계속 자기가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공부하는 게 삶인 것 같다. 어떻게 살겠다는 목적성에 갇히지 않고 매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인 것 같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게 확신이 안 들어서 방황하고 있는 나의 생각들을 무감각하게 ‘냅두는’ 사람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해 면대면 해서 하루하루 살면서 이렇게는 살면 안 되겠다 하는 걸 배워가는 수밖에 없는 건데 그런 걸 배우지 않고 산다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 할것 같다. 그래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편한 게 아니다. 행복이지만, 오히려 불편할 거다.
그런데 이걸 한번 느끼면 이런 역동성이나 생생함이 그 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느끼고 싶고 알고 싶고, 멈추고 싶지 않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곧 행복한 것. 내가 살아있는 순간에 과거의 나를 휘발시키고 현재의 ‘나’로서만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행복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김은영 기자 keunso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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