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은 가능성이다
애매함은 가능성이다
  • 김은실(특수교육) 강사
  • 승인 2011.11.29 19:50
  • 호수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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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왜 범주를 만들까?

 


새벽 두 시에 당신의 집 초인종이 울린다고 상상해보자. 놀라서 잠을 깬 당신은 현관으로 나간다. 현관에는 한 남자가 서 있다. 이 남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두 개나 끼고 모피 코트를 입었으며 남자의 뒤에는 외제차가 서 있다. 남자가 말하길 야심한 시간에 죄송하지만 한 시간 안에 친구들과 물건 찾아오기 경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로 90cm, 세로 210cm정도가 되는 나무판을 찾아야 하는데, 당신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보답으로 1억원을 주겠다고 한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필자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이 상황을 주고 학생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며 그 남자의 요구를 무시하는 반응이 가장 우세하였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나무판 하나를 구해준다고 1억을 준다는 것과 새벽 두 시에 자신의 방문을 두드린 사람이 제정신이 아닐 거라는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재제소를 찾아다닌다’, ‘대형 마트나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잘 모르겠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봅시다. 백만장자가 다녀간 그 다음날 당신이 친구의 집근처 공사장 옆을 지나가는데 딱 그 정도 크기, 즉 가로 90cm, 세로 210cm의 나무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름 아닌 문짝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문짝의 크기는 가로 90cm, 세로 210cm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날 밤에는 왜 생각이 나지 않았던 걸까요? 그 이유는 문은 당신에게 나무판이 아니라 단지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은 허버드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알아보려고 실시한 것입니다. 진짜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도 위의 학생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있는 문을 나무판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한 가지 범주를 가지면, 그 범주외의 다른 것은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범주를 만들고 그 범주들을 구별하면서 범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범주는 우리를 자동적으로 범주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가령 미팅을 나갈 때, ‘마른 남자는 신경질적이야’, ‘남자가 얼굴이 잘 생기면 바람핀다’라는 남자에 대한 범주를 가지고 있는 여자는 마른 남자나 얼굴이 잘 생긴 남자들을 만나면 피할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꿈꾸던 킹카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들은 왜 범주를 만들까요? 세상은 다양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는 나를 위협하는 것들도 존재합니다. 위협하는 것들을 재빨리 알아차려야 그 위협으로 피하거나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하여 위협하는 것과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는 커다란 범주를 형성합니다. 범주는 세상을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의 가능성을 빼앗아 갑니다. 요즘 인기 있는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라는 개그맨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애매한 것들을 구별하고 정해주는 것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실제로 애정남이 정해주는 많은 것은 우리가 공감하는 것들로 일단 정해지면 우리를 편하게 합니다. 반대로 애매한 것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가능성도 줍니다. 남자 선배의 ‘네가 생각 난다’라는 메시지는 좋아한다는 뜻인지 아닌지. 이런 애매함이 그 선배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슴 설레는 기대와 가능성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범주는 두려움이고 애매함은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김은실(특수교육) 강사

김은실(특수교육) 강사
김은실(특수교육) 강사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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