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이름
[백색볼펜]이름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12.06 14:24
  • 호수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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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까먹듯이


◇ 어제 지나가다가 피아니스트 이루마 콘서트 광고 현수막을 보았다. ‘이루마’.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이루마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게 됐을 때, 처음에 외국인인줄 알았다. 그의 이름 때문에. 풀네임이 따로 있는 외국인이거나 혹은 예명을 쓰는 피아니스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사진을 보니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그의 이름 ‘이루마’는 본명으로 ‘어떤 일을 뜻한 대로 이룬다.’는 의미를 지닌 순수 우리말이었다. 그의 누나 이름도 ‘이루리’라는 우리말이다. 그의 딸 이름도 순우리말 ‘이로운’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우리말 이름이 참 예쁘다.


◇ 고우리, 민토란, 박하영, 김로아, 남은샘, 류지나, 정초아. 평소 예쁘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생각나는 대로 막상 적어 놓고 보니 그리 특이하지도 않고, 흔한 이름 같다. 아마 예쁘다고 느꼈던 이유는 드러난 이름이 단순히 예쁘다기보다 이름과 함께 각인된 그들의 모습이 함께 떠올라서인 것 같다. 그렇다. 적어 놓고 보니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좋으면 그의 이름도 괜히 예뻐 보이나보다. 김춘수가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꽃」중에서) 명명하다. 이름을 짓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에야 의미가 있다. 즉, 명명하는 역할의 가치보다 이름에 해당하는 무언가의 존재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 대학교 이름만큼 우리나라에서 네임벨류를 따지는 이름도 없다. 고3 시절, 대입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대학교들이 있는지 새삼 알게 된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대학의 이름까지 수능 칠 무렵이면 어느 새 친숙하게 느껴진다. 어느 대학에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네임벨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이 그 대학을 얼마나 아는지, 인지도가 얼마나 높은지, 정작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것은 따로 있어도 네임벨류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는 한다. 선택의 결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네임벨류가 대학 선택의 당락을 짓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명문대가 좋긴 하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깨달은 점은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중요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꼬리표의 가치에 기댈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의 가치를 높이는 게 정답 아닐까. 대학의 이름으로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성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자기 존재를,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곳이다. 겨울철 뜨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귤껍질은 잘 까서 버리고, 달콤한 알맹이는 잘 챙겨먹으면서 왜 그렇게 밖에서는 껍데기에 집착하는가.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집착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 이루마의 ‘Kiss the rain’ 피아노 선율만큼이나 정말 아름다운 ‘진짜 이름’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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