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마지막
[백색볼펜]마지막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2.01.03 13:09
  • 호수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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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도 자라나는 손톱처럼

◇ 언제나 다사다난한 한 해가 또 가고 새해가 왔다. 지난 2011년 마지막 날, 한 해를 정리하며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 써왔던 일기들을 쭉 읽어보았다. 늘어난 일기장 수만큼이나 시간이 훌쩍 흐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한 페이지에 같은 날 10년의 기록을 남기는 ‘10년 일기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터라 지난 3년 간 비슷한 날짜의 일기를 한번 비교해 읽어보았다. 열심히 읽고서 느낀 바는 ‘식상하다.’였다. 어쩜 그리도 비슷한 무렵에 비슷한 고민만을 했을까.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나보다. 수많은 다짐과 반성의 반복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매년 같은 다짐과 반성이라는 데 있다.


◇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한다면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엔딩을 모른다. 잘라도 또 자라나는 머리카락, 깎아도 또 자라나는 손톱처럼 삶은 지속된다. 살아있는 한 엔딩은 가봐야 아는 것. 그러나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 사이 우리는 수많은 엔딩을 맞이한다. 끝이 나는 다양한 순간들의 연속이 삶이다. 인생은 일종의 시리즈물 같다고나 할까. 연말과 새해가 그 시리즈물의 정기적인 전환점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희망찬 새해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다짐을 하고 또 이루지 못했던 소망들로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스토리를 보충해 매해 새로운 시리즈가 펼쳐진다.


◇ “끝을 내지 않으면 좋은 느낌 그대로 두고두고 남잖아요. 그래야 마음이 놓여요.”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여주인공 지우는 엔딩을 보지 않는다. 책이든 영화든 엔딩은 보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끝내기가 두렵고 좋은 기억만을 가져가고 싶은 욕심인 것 같다. 그러나 역으로 나는 소설책을 고를 때, 엔딩을 먼저 보고는 했다. 해피엔딩이 좋아서,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만 찾아 읽곤 했다. 결과를 먼저 알고 나서, 그 과정을 따라 가보는 게 더 흥미로웠다. 흥미로웠다기보다는 끝내기가 두려운 지우처럼 안 좋은 엔딩이 본능적으로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 또 하나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쓰는 백색볼펜이다. 편집장이 되고나서 처음 백색볼펜을 쓸 때 참 막막했는데, 마지막 백색볼펜을 쓰고 있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 슬프기까지 하다. 참 한결 같다. 미리 쓸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색볼펜은 역시 마감에 임박해서 써야 제맛이다. (핑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고, 무언가 끝난 뒤에는 늘 아쉬움과 후회가 남고, 쉽게 변하는 것은 없다. 지난 일기처럼 백색볼펜의 마지막 기분도 비슷하다. 강한 스토리로 긴 여운을 남기면서 백색볼펜의 스펙터클한 해피엔딩을 고대했는데 실패한 것 같다. <김종욱 찾기>에서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여전히 끝을 두려워하는 지우에게 남주인공이 오글거리는 대사 하나 날려준다. “…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 단대신문은 네버 엔딩 스토리. 차기 편집장이 앞으로 보다 나은 백색볼펜을 써주지 않을까. 무엇이든 다시 할 수 있다면, 네버 엔딩 스토리다. 그래서 새해는 늘 희망차다. 많은 이들이 반복된 다짐과 반성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일단은 The end.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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