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단대신문 학술·문학상』소설부문 당선작
제35회 『단대신문 학술·문학상』소설부문 당선작
  • 단대신문
  • 승인 2012.01.03 16:44
  • 호수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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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축제와 궁상맞은 우리들」

제35회 『단대신문 학술·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불꽃축제와 궁상맞은 우리들」백승연(문예창작·2) 양

남자친구에게 예쁘게 보이려
치마를 입고 오는 여자들
밤이 되면 추워지게 돼 있어

불꽃이 다 지나가 버린 검은 밤하늘
하늘 안에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의 밤은 언제나 반짝이는 것들의 바다가 된다. 옥상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별은 하늘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반짝였다. 묵묵히 자기 몫을 하고 있는 가로등이나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낮에는 다방이 되고 밤에는 술집이 되는 ‘만남’이라는 이름의 간판, ㅇ대신 하트를 박아 넣은 노래방까지 모든 것이 반짝였다. 안경을 벗고 한참 떨어진 시력으로 이것들을 바라보면 빛나는 것들은 모두 뭉개진 채 형태를 벗어났다. 헤드라이트는 도로 위에 박아 놓은 색색의 압정처럼 보였고 가로등 불빛은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싸구려 우정반지 속 큐빅 같았다.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전봇대에 걸쳐진 전깃줄을 탯줄 삼아 필사적으로 빛을 뿜었다. 빛나지 못한다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듯이.


내 삶에서 가장 처음으로, 바로 눈앞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던 날은 내 돌잔치 때였다. 수박과 배, 사과, 꿀떡, 백설기, 무지개떡, 장난감 자동차와 돌반지가 올려져있던 조촐한 상 앞에서 나는 서럽게 울어댔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돌잔치 사진 속 나는 내내 울기만 하던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들고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는 사진 속에서 찡그리고 있는 내 표정을 따라하면서 웃었다. 이때 네가 하도 울어대서 사진사 아저씨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사진을 찍으려고만 하면 울었어. 너 좋아하던 뽀빠이 과자를 뜯어 줘도 울음을 그칠 생각을 안했지. 나는 도시의 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마, 플래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방금 뭘 본 것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터졌다 사라지는 플래시가 무서웠을 것이다. 빛과 어둠을 한 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그 이상한 기계의 반짝임 때문에 말이다. 좋아하던 뽀빠이 과자를 쪽쪽 녹여먹으면서, 하지만 사진사가 사진기를 들이밀 때마다 엉엉 울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사진 속 나는 한쪽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아마도 그 손엔 별사탕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 형 또 올라갔다. 그냥저냥 받아줘.”
아빠의 전화였다. 형이 또 집을 나갔고, 내가 사는 옥탑 방으로 올 것이란 소식이었다. 형은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대학에 붙어서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자취방을 얻어 살았다. 형은 뭔가가 자기 뜻대로 안 될 때면, 그것이 큰일이건 작은일 이건 간에 자체 휴강을 했다. 이번에는 그림 동화 일러스트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그림 동화를 만드는 게 꿈도 아니면서 넣은 것도 이상했지만 그게 떨어졌다고 쓸데없이 우울함에 빠져있는 건 또 뭔가 싶었다.
“데리러 와라. 버스 정류장.”
형은 짧은 두 마디를 내뱉고 수화기를 내렸다.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는 시기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점퍼를 걸쳐 입고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형만큼 그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형은 아직도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만 힘들어질 뿐이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피하게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왔다.
“조용히 해. 밤이잖아. 그리고 이건 또 뭐야?”
형의 옆에는 종이상자 네 개가 쌓여있었다. 세 개는 시장에서나 쓸법한 바퀴달린 장바구니에 묶여 있었고 하나는 형이 직접 들고 있었다. 형은 상자가 무겁다고 끙끙대면서 일단 움직이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바퀴달린 시장바구니를 끌었다.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하루 일 하고 이십만 원 정도 버는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
형은 상자에 든 것이 모두 담요라고 했다. 상자마다 분홍색, 연두색, 노란색, 보라색 담요로 꽉 차있었다. 모두 이백 장이었다. 이걸 살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사실 이번 공모전에 당선됐다고 했다. 담요는 한 장에 삼천 원이었다. 공모전 상금 육십만 원을 탈탈 털어 모두 담요로 바꾼 것이었다.
“이 많은 걸 어쩌려고.”
“팔아야지. 내일 불꽃축제 때 여의도에서 한 장에 육천 원에 팔 거야.”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형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팔아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주말 알바를 했던 것이 직접 돈을 번 경험의 전부였다. 게다가 불꽃축제 때 담요를 팔자니. 맥주나 치킨, 닭꼬치나 버터구이 오징어도 아니고 말이다. 다 팔기는커녕 반도 못 팔 것이었다.
“불꽃축제잖아. 남자친구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치마 입고 오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리고 밤 되면 다 추워지게 돼 있어. 형만 믿어보라니까?”
계속해서 형은 하루를 일하고 받게 될 이십만 원에 대해 얘기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냐고. 나는 다 팔 수 있다는 말을 믿지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형은 다 팔지 못하더라도 이십만 원은 꼭 주겠다고 약속했다. 여기까지 얘기가 이어지자 형의 제안이 나한테 큰 손해는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내일 같이 나가면 이십만 원이 생겼다. 나는 살짝 긍정적으로 태도를 고쳤다. 게다가 형의 과거를 떠올려보면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팔아치울 수 는 있을 것 같았다. 
형은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진 못했지만 뭔가를 파는 데는 머리가 잘 돌아갔다. 중학교 때는 그림을 잘 그려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팔기도 했다. 주 고객이 남학생이다 보니 대부분 나체의 여자들 그림이었고 엉성하지만 스토리를 입힌 야한 만화도 많았다. 형과 한방을 쓰던 나는 모른 척 다 보고야 말았다. 학교만 끝나면 공부 대신 하는 일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여자들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서 예약까지 받아 놓은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중학생 치고는 꽤나 자세한 묘사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형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나 또한 사춘기였기에(그리고 모든 걸 공짜로 봤으니까), 나는 형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도 아빠에게 비밀을 지켰다.
형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아빠 몰래 나이키 신발을 살 정도였으니 꽤 번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나 때문에 끝이 났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 또한 사춘기였다. 나는 형보다는 착실히 공부 했고, 책도 많이 읽었다. 몰래 야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다 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천문학을 좋아하는 형이 있었다면 별에 대한 소설을 썼을 것이고 야구를 좋아하는 형이 있었으면 야구에 대한 소설을 썼을 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여기까지만 하겠다.
내가 형의 그림을 훔쳐보는 것만큼이나 형이 내 글을 훔쳐 읽는 것이 쉽다는 것을 왜 나는 일찍 눈치 채지 못했을까. 형은 내가 쓴 소설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소설 속 몇몇 장면을 직접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형의 산업은 진화해서 형은 그림집이 아닌 그림책을 만들어냈다. 그림형제처럼 서로 힘을 합쳐 만든 진짜 책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들켰고, 나는 아빠에게 이르는 대신 일정한 몫을 달라고 했다. 나도 나이키 신발이 갖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뜻밖에도 형은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많은 몫을 요구했거나 자신만의 사업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았거나. 나는 곧바로 아빠에게 일렀다. 형은 아빠에게 뒤통수와 등을 질릴 때까지 두드려 맞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결국 나는 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불꽃 축제 때 할 일도 없었다. 불꽃 축제는 아직까지 행복한 연인들과 하루쯤은 감상적이 되고 싶은 여자애들과 말 잘 듣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한곳에 모이는 날이니까. 나는 아직까지 행복할 연인이 없고 감상적이고 싶지도 않았다. 말 잘 듣는 아이시절은 오래전에 지나버렸고, 함께 나올 부모도 멀리 있었다. 차라리 돈이나 벌고 있는 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일 것이었다. 이십 만원이 생기면 한 달에 이만 원씩 빠지는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열 달이 넘게 이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돈은 왜 벌려고?”
“부산 가려고.”
형은 방안 구석에 상자를 쌓아올리며 말했다.
“부산 가서 뭐하게.”
“맛집 찾아다니게. 지금 가서 뭘 먹을 지 목록 작성하고 있어. 밀면을 그렇게 잘 하는 집이 있대.”
“그게 다야?”
형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다라니. 난 배만 채우면서 사는 거 싫어. 진짜 맛있는 걸 먹어야지.”
다음날, 우리는 어제처럼 상자를 나눠들고 집을 나섰다. 불꽃축제 시작 세 시간 전이었다. 나는 왠지 좀 더 일찍 나가야 할 것 같았지만 형은 꽤나 여유를 부렸다. 걱정하지 말라고 불꽃축제 한 시간 전까지 충분히 다 팔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형은 상자 하나를 끙끙거리면서 앞장섰다. 나는 어제 끌던 시장용 바구니를 끌었다. 시멘트가 여기저기 깨진 길 위라 바구니는 내내 달달거렸다. 손이 얼얼해졌지만 그보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나를 쳐다보는 동네 할머님들의 시선 때문에 창피했다. 형은 아무렇지 않게 그 할머님들에게 “담요 하나 안 사실래요?”라고 물었다. 할머님들은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고 웃으며, 그렇지만 또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바구니를 힘차게 끌고 형을 앞서나갔다. 달달달 소리는 탈탈탈 소리고 바뀌어갔다.
일주일도 안 되었을 것이다. 친구 녀석 두 명과 함께 동네 술집에 모여 술을 마셨다. 유리잔에 소주를 넘치게 따르면서 나는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정말 억울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다 지나갈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표 없는 대화가 반복되었다. 점점 시야가 좁아졌고 귓구멍이 막혀서 앞에 있던 두 놈이 무슨 얘길 하는 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난 그게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던데.”
“나도 뭐, 비슷한 문장이 있긴 하지만. 당선 취소까지 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말이야. 본인이 안 읽어봤다는데. 학교 애들은 왜 또 호들갑인지.”
“하필이면 같은 과 선배랑 얽혀서. 아아, 그냥 잊어버려.”
친구들은 스쿼시를 하는 것처럼 리드미컬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날아간 공은 계속해서 돌아왔고 결국 아무것도 위로가 되진 않았다. 아직 초저녁이었지만 나는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비틀비틀 집을 향해 걸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시멘트 길, 발에 자꾸만 시멘트 조각이 차였다. 땅이 울렁였다. 가로등 불빛이 흐물흐물해 보였다. 다 깨진 시멘트 바닥이 무대이고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내가 배우라면, 지금이 바로 소리를 지르고 절규하고 욕을 퍼부어야할 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당시엔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추측만 가능하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억지로 떠올려보면 아마 나는 기둥을 상대배역 삼아 떠들어댔을 것이다. 이번에 쓴 작품 속 대사를 읊었을 수도 있고 수업시간에 영감을 준 교수님을 욕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같은 영감을 받은 선배를 제일 많이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선배보다 빨리 작품을 써내지 못한 나를 가장 욕했을 것이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나는 기둥을 껴안은 채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내 반대편엔 방금 전에 지나친 슈퍼가 보였고 일찍 일어나신 할머님들이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탈탈탈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길을 내려왔다. 형이 뒤에서 헉헉거리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 안은 예상대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앉을 자리는 당연히 없었고 가만히 서있기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내가 잡고 있는 시장바구니를 치고 갔다. 나는 지하철 안에 젊은 남녀들을 찾아봤다. 이들 대부분이 불꽃축제에 가는 중일 것이었다. 형의 말대로 치마를 입고 온 여자가 얼마나 되는 지 훑어보았다. 그러다 불쾌한 표정을 한 커플과 눈이 마주쳐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불꽃축제로 인해 여의나루역은 정차하지 않는 다는 메시지와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요청 메시지가 왔다. 나는 형에게 여의도역에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형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그런 걸 왜 이제 알려 주냐고 짜증냈다.
역 밖으로 나오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그들은 모두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고 그 한 곳은 보나마나 여의도 공원일 것이었다. 형은 주변 벤치에 상자를 올려놓고는 땀부터 닦았다. 나도 이미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지만 바구니를 끌고 다닌 터라 힘들다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형은 목과 허리를 두세 번씩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곧바로 다시 길을 걸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지금 이 순간 할 일은 앞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허리 밑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여자 구두에 엄지발가락을 밟혔다. 여학생들은 한 줄로 쭉 늘어서서 걸으며 피난 가는 것 같다고 쉴 새 없이 웃어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불꽃을 보기위해 모였다는 게 신기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의 약속을 공유했다. 연인 간의 가족 간의 친구 간의 약속이 모여 결국엔 다 똑같은 약속이 되어버린 것이다. 밀집된 한 공간에서 그래도 사람들은 각자의 친구를 연인을 잘도 찾아냈다. 갑자기 형이 뒤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분명 옆에서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형은 내 뒤에서 낑낑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저기 좀 봐봐.”
형의 눈짓을 따라 가보니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둘이서 야광봉을 팔고 있었다. 벌써부터 걸어가면서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자를 야광봉으로 두른 남자들은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린이들이 몰려와 멍하니 올려보다가 다시 각자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들은 야광봉을 쓸모없는 물건처럼 쳐다봤지만 오늘 만큼은 너그러워지자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다. 분명 다른 품목이었지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형은 지금부터 팔면서 움직이자고 했다. 나는 형의 말에 동의했다.
“담요! 담요 있어요. 육천원입니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나오진 않았다. 그까짓 물건 파는 게 뭐 어렵겠냐고 생각해서 연습도 하지 않았다. 일을 너무 쉽게 본 것이었다. 사람들은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제 갈길 갔다. 형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앞서 나갔다.
“남자 분들! 여자 친구 담요 하나 사주세요. 단돈 육천 원. 밤 되면 추워요!”
형은 상자를 뜯어 담요를 흔들어댔다. 형은 역시 달랐다. 몸동작도 큼직큼직하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나도 끌고 있던 바구니를 세워두고 담요를 뜯어 머리 위로 흔들었다. 드디어 첫 손님이 왔다. 여자 친구 손을 꼭 잡은 남자가 담요 하나를 사갔다. 육천 원 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갑을 열고 돈을 꺼냈다. 담요를 받고 돌아가면서 여자는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나라면 차라리 겉옷을 벗어줬겠다, 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담요를 사줄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의 투정이겠지만.
형은 역시 물건을 파는데 소질이 있었다. 그 소질을 살려서 제대로 된 진로를 정하지 왜 몇 년째 틈만 나면 휴학을 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건을 팔 때의 형은 집중력도 최고조였다. 뒤따라오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소리를 지르고 직접 연인들을 불러 세워 소비를 권유했다. 십분 사이에 벌써 세 개를 팔아치웠다. 그동안 나는 움직이는 창고처럼 상자를 끌고 형의 뒤꽁무니만 쫓았다.
드디어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땅 위에 빼곡하게 박힌 못들처럼 보였다. 그다지 큰 움직임도 없이 머리만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게 관건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다들 핸드폰 조명을 바닥에 비추고 꾸물꾸물 걸었다. 여기저기서 픽픽, 호루라기를 부는 의경들의 모습이 보이고 맥주 파는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진짜 전쟁터는 이곳이었다. 우리는 피난을 떠난 것이 아니라 전쟁 지역으로 들어가는 중이였다. 곧 폭죽도 터질 테니 진짜 전쟁 분위기 제대로 나겠다.
형과 나는 바로 건너편에 화장실이 보이는 곳에서 멈춰 섰다. 좋은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다 차지한 상태였다. 일찍 나서는 게 기본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주변엔 우리 나이또래의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맥반석 오징어를 팔거나 핫바를 파는 사람들도 보이고 야광 팽이를 파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나처럼 용돈 좀 벌어보겠다고 나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담요 있어요! 육천 원, 육천 원!”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잠재우기엔 아직도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아까보단 나았다. 형은 양 옆구리에 담요를 끼고 열심히 연인들의 돗자리를 찾아다녔다.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 틈에서도 형은 웃음을 잃지 않고 판매를 계속했다. 형이 네 개의 담요를 팔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아주머니 한 사람에게 겨우 담요 하나를 팔았다. 삼 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을 가방 앞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콧등에서 미끄러진 안경을 추켜올렸다. 다른 사람의 돈을 얻는 다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멀뚱히 서서 형이 올 때마다 담요를 챙겨주었고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에게 물건을 건네주었다. 슬쩍 보니 서른 개는 판 것 같았다.
삼십 분이 지나자 형은 담요를 살 사람을 아예 데리고 왔다. 분홍색, 노란색, 연두색 다 골라 보시라, 어느 새 말투도 좀 달라져 있었다. 목소리 톤은 이미 한 옥타브가 올라간 것 같았고 말은 또 얼마나 빨리 하는 지 속사포 랩을 하는 줄 알았다. 형은 남자에게 여자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다며 칭찬했다. 어쩌면 나중에 형이 다단계를 한다고 해도 잘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형은 다시 옆구리에 담요를 끼고 떠났다. 남자친구의 어깨에 쌓인 여자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며 고민했다. 아랫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별로 안 예뻐.”라는 말을 조그맣게 했다. 나는 형에게서 배운 대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여자 분이 작으셔서 노란색이 잘 어울리겠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자기야, 저기 봐봐.”
여자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뭔가 살펴보니 ‘담요 만원!’이라는 글자가 크게 들어왔다. 우리가 있는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마도 열 발자국이 조금 안되게 떨어진 거리에 남자 셋이서 담요를 팔고 있었다. 아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걸로 봐서 여기 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보다 사천 원이나 비싸다는 게 안심이었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남자 하나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담요를 들어올렸다. 남자가 들어 올린 담요에는 앙증맞은 하트가 여기저기 박혀있었다. 핫핑크색, 연보라색, 민트색 등 색깔도 다양한데다가 하트모양 뿐만 아니라 물방울무늬와 고양이가 그려진 담요까지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기야 저쪽 가면 안 돼?”
돈을 아끼지 않는 남자는 아무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둘은 ‘담요 만원!’쪽으로 가서 고양이 담요를 사고 사라졌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형도 들고 나간 담요를 다 팔지 못하고 돌아왔다. 불꽃축제가 시작되기까지 이제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폭죽이 터지는 와중에 파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민무늬 파스텔 톤 담요는 귀여운 무늬가 새겨진 담요에 대항하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젊은 커플들이 그쪽으로 몰리고 우리 쪽을 쳐다보던 사람들도 시선이 ‘담요 만원!’쪽으로 돌아갔다. 여자들은 고양이와 물방울무늬 담요를 두르고 돌아다녔다. 유심히 살펴보니 원단부터가 우리 것과 달랐다. 저들이 파는 담요는 부들부들한 면으로 만들어졌고, 우리 원단은 부직포에 가까웠다.  
“형, 어쩌지?”
형은 입을 앙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어디선가 소시지가 구워지는 냄새가 났고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값이 싼 치킨을 구워서 파는 젊은이들이며 닭꼬치를 파는 할아버지, 캔 맥주를 파는 아줌마도 보였다. 하필이면 왜, 저들은 담요를 파는 것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은 입을 열었다.
“우리 이거, 오천 원에 팔자.”
형은 이제부턴 커플이 아니라 삼사십 대 부부를 노리라고 말했다. 옆집 보다 훨씬 싸다는 걸 강조하라고. 가능한 멀리 멀리 움직이자고. 힘이 쭉 빠지는 대답이었지만 형의 말이 맞았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담요를 무늬가 새겨진 담요들을 제치고 팔 수 있는 방법은 가격을 좀 더 낮추는 길 뿐이었다.   
“담요 오천 원! 싸요 싸!”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이제 없던 용기까지 생겨서 담요를 머리 위로 들고 사정  없이 흔들었다. 순식간에 두 개를 팔아치웠다. 담요 열 개를 들고 원정을 나갔던 형도 다행히 모두 팔고 돌아왔다. 형과 나는 눈빛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분명, 알 수 있었다. 이제 오십 개 이상 판 것 같았다. 형이 목덜미에 땀을 닦으며 이제 곧 있으면 불꽃축제가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도 무늬 있는 담요를 살걸 그랬어.”
나는 남은 담요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말했다. 형은 담요가 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하고 작게 웅얼거렸다.
피슝,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성이 먼저 터졌다. 우리는 종이 상자를 깔고 앉은 채 하늘을 올려보았다. 드디어 불꽃이 터졌다. 황금빛 불꽃은 끝도 없이 늘어져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천개의 손짓이 되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형과 나도 소리를 질렀다.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의 불꽃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불꽃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검은 하늘만 남았을 때, 주변은 정적으로 휩싸였다. 하지만 곧 피슝 하고 무언가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토독토독, 방울토마토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야자수 세 그루가 하늘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로 이루어진 실루엣은 파도처럼 흔들렸다. 밤의 바다가 움직였다. 하늘엔 불꽃이 떠올랐다가 지워졌고 검은 캔버스엔 곧바로 다른 그림이 채워졌다.   
형은 담요를 목에 묶고 나를 보며 웃었다.
“너 어렸을 때 무릎에 금간 거 기억 안 나냐? 슈퍼맨 흉내 내다가 담벼락에서 떨어져가지고.”
기억이 안 날 리가 없다. 살면서 처음으로 깁스를 해봤다. 덕분에 한 달간 유치원을 쉬어야 했다. 어릴 적에 슈퍼맨 흉내 한 번 안내본 애들은 없을 것이다. 배트맨을 흉내 내는 건 손으로 가면만 만들면 끝인데, 슈퍼맨을 흉내 내기 위해선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또래 친구들 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멋진 포즈를 취하고 떨어져야 했으니까. 담요를 망토삼아 목에 묶고서, 나는 겁도 없이 유치원 담벼락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를 우러러보는 많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멋지게, 추락했다. 당시 밑에서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 중엔 형도 있었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급히 달려와 나를 업고 병원으로 갔다.
“그때 엄마가 너무 급해서 나를 두고 간 거야. 아빠가 대신 나를 찾으러 왔는데 어디 맡겨 둘 데가 있어야지. 할 수 없이 아빠는 나랑 같이 일을 하러 나갔어. 아빠가 일하는 데 따라간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
아빠의 손을 잡고 형이 간 곳은 시위가 한창이던 한 광장이었다. 여기저기 흩날리는 붉은 깃발과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누군가의 성난 목소리, 노래에 맞춰 흔들리는 어깨들. 형은 본능적으로 아빠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이윽고 아빠는 가방에서 썬캡을 꺼냈다.
“썬캡, 이천 원! 이천 원!”
유난이도 더웠던 날이라고 했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사람들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열심히 닦으며 구호를 외쳤다. “부당 해고 반대!” “노동자들의 최소 인권 보장!”등의 외침을 뚫고 아빠는 썬캡을 팔았다. 형은 썬캡이 생각보다 잘 팔렸다고 강조했다. 시위자들이 꽤 많았고 이들을 찍으러 온 기자들도 많았다. 광장은 사람들의 열기가 더하고 더해져 뜨겁게 타올랐다. 하나 둘씩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아빠를 찾았다. 썬캡이 하나씩, 두개씩, 열개씩 팔려나갔다.
“그때 말이야. 어떤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아저씨가 아빠한테 그랬어. 참 좋은 일 하십니다, 하고. 참 좋은 일 이라고 할 때 발음이 좀 길어서, 어린 나도 그게 정말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빠의 표정은, 형의 말에 따르면 내 돌 사진 속 찡그린 얼굴과 유사하다고 했다. 아랫입술을 앙다문 채로 아빠는 계속해서 썬캡을 팔았다. 형은 아빠를 기죽이기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형은 썬캡을 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썬캡 사세요!”라고 소리치고 다녔다. 아빠는 그런 형에게 달려와 썬캡을 뺏었다. 그리고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무섭게 노려봤다. 형은 그때가 살면서 아빠가 가장 무서웠을 때라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어쩌면 중학생 때 형이 내 동업 제의를 거절한 것도 이런 이유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담요 판 것도 비밀이야. 알아듣지?”
어디서 또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옆자리에서 누군가가 불꽃을 쏘아 올렸다. 매점에서 파는 값싸고 작은 불꽃이었다. 어른 손바닥 크기도 될까 말까한 불꽃이 피슉, 힘빠지는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사라졌다.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크고 화려한 불꽃과 함께 보니 정말 초라했다. 주변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시선은 잠시 동안 큰 불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불꽃에게로 쏠렸다. 형과 나도 외롭게 솟아오르는 손바닥 크기의 불꽃을 보며 웃었다. 어차피, 큰 불꽃이건 작은 불꽃이건 간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한순간이라도 별을 흉내내고자하는 것이 불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별을 흉내 내고자 하는 것은 많았다. 하지만 흉내라는 것은 처음부터 어딘가에 모자람을 품고 있는 법이었다. 야광별은 더 빛나는 것들 앞에서 힘을 잃었고 내가 좋아했다던 별사탕은 손에 꼭 쥐면 녹아버렸다. 이런 생각이 나를 조금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반짝이려는 모든 것들에 동정심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터지던 불꽃은 이제 끝이 났다. 불꽃이 끝났으니 불꽃축제도 끝났다. 형과 나는 불꽃이 다 지나가 버린 검은 밤하늘 아래서 멍하니 않아있었다. 손끝까지 힘이 풀려있었다. 하늘 안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자리에 꽂혀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훨씬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굳이 형에게 오늘 담요를 다 팔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았다. 무심코 ‘담요 만원!’쪽 사람들을 보니 그들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남은 담요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만원 이란 글자는 팔천 원으로 고쳐져 있었다.
털털털, 바구니를 끌고 집을 향해 걸었다. 슈퍼 앞에는 아직도 집에 들어가시지 않은 할머니들이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형은 상자 속에 담요를 꺼내 할머니 세분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할머니들은 깔깔깔 웃으며 많이 팔았냐고 물어왔다. 형은 멋쩍게 웃으며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젊으니까, 참 좋은 때라고 할머니들은 말했다. 형과 나는 다시 집으로 걸었다. 집까지 가는 길이 경사가 이렇게 높았나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조심스럽게 이십만 원은 괜찮다고 말했다. 남은 담요를 대충 세어봤는데 반 이상이 남아있었다. 원금도 못 건졌을 것 같았다. 형은 별 대답이 없었고 나는 이불을 깔았다. 아직도 밤하늘은 출렁거렸지만 피곤함에 눈이 감겨왔다. 우리는 슬렁슬렁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유 없이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시원함이 느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시렸다. 하루가 이렇게 식어버렸다.
“지금이 좋은 때면 나중은 얼마나 힘들까. 정말 많이 힘들까?”
형은 조용히 물어왔다. 너무 조용해서 사실 질문이 아닌 줄 알았다. 형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당장 이겨내야 할 걱정거리가 너무 많았다. 당선 취소 후, 글을 안 쓴 지가 석 달이 넘었다. 여기저기서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있었다. 나중을 걱정할 틈도 없었다. 나는 벽을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이번에 부산에서도 불꽃 축제를 해. 너도 갈래? 남은 담요 다 팔면 그럭저럭 편히 놀다 올 수 있을 텐데.”
“학교 가야지. 돈 벌 시간도, 놀 시간도 없어.”
형도 이제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어둠에 익숙해지니 내 방구석에 쌓인 담요 상자와 이것저것 뒤섞긴 소설책과 시집이 보였다. 문 위에는 돌 사진이 떡하니 붙여져 있었다. 찡그린 표정의 내가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 봤다. 벽에 붙여진 포스트잇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명언이 쓰여 있었다. 안경을 벗어놓은 터라 뭐라고 쓴 건지 보이지가 않았다. 분명 포스트잇에 썼을 때만 해도 무언가 깊은 감명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형은 없었다. 책상 위에는 이십 만원이 말없이 포개어져 있었다. 담요 상자도 시장바구니도 없었다. 형은 진짜 부산으로 떠난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이불을 개었다. 이불 밑에 연두색 담요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담요는 담요일 뿐이었고 슈퍼맨을 흉내 내기엔 턱없이 초라해보였다. 하지만 진짜 초라한 건 나였다. 나도 형과 함께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어렸을 땐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것 따위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어딜 그렇게 높이 올라와 있다고. 기껏해야 옥탑 방에서.
나는 달달달 거리며 바구니를 끌고 가는 형을 떠올렸다. 다 깨진 시멘트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어쩌면 지하철에서도 담요를 팔지도)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외로운 젊은이를, 어울리지도 않는 미식가 흉내를 내며 밀면을 찾아 헤맬 형을 떠올렸다. 그게 다야? 라고 물었지만 정말 그게 다인 꿈도 있는 법이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진짜 맛있는 걸 먹으러 가겠다는 형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새로운 작품을 써내보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바로 이것뿐이니까. 의지가 생기자마자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하얀 화면 앞에 앉았다. 아침이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시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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