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회 단대신문 학술·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제 35회 단대신문 학술·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단대신문
  • 승인 2012.01.03 17:05
  • 호수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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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도 고통스런 사유의 결과

시부문 심사평

 심사위원 : 김수복(문예창작·시인) 교수, 오민석(영어영문·시인) 교수

기발한 상상력도 고통스런 사유의 결과

겨울이 깊어 가는 세밑, 우리 단국대학을 대표하는 문청(文靑)들의 시를 읽는 마음은 기쁘다. 미디어 매체가 우리의 모든 감각을 압도하는 것 같은 이 시대에 날을 지새우며 언어를 조탁하는 예비시인들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함께 문학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랴. 발터 벤야민의 말마따나 기술복제시대 이후 예술이 그 모든 아우라를 상실했다고 해도, 예술 생산의 과정은 여전히 동일하다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리는 경악한다. 그렇다. 예술은, 문학은, 시는 이제나 저제나 세계에 대한 절망적 사유의 결과이다. 보들레에르가 19세기 중엽 절망의 끝에서 『악의 꽃』을 쓸 때나, 엘리어트가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서 『황무지』의 잔인함을 노래할 때나, 지금 21세기의 어느 저녁에 “취기에 쿨렁”이며 우리의 문청들이 고통 속에 시를 다듬을 때나, 문제는 늘 절망이고 좌절인 것이다. 아픔이 없이 시가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가령 시는 사는 만큼 써진다는 말도 결국은 이 이야기인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것도 결국은 고통스러운 사유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투고된 작품들을 보면 이 고통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단국의 예비 시인들이 나름 고투를 하고 있다는 증표이고, 단국문단의 미래가 나름 어둡지 않다는 증거이다. 다만 우리는 이 고통을 형상화하는 말의 재미를 우리 문청들이 알기를 원한다. 시란 고통스런 사유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형식적인 측면에서 전통 혹은 규범과의 끊임없는 단절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그러니 마음껏 상상하고 뛰어넘어야 한다. 이 뛰어넘기의 자질이 없이, 이 뛰어넘기의 즐거움이 없이 시는 성취되지 않는다. 이 겁 없는 상상력 앞에 새로운 시의 지평이 열릴 것이고, 이 겁 없는 상상력의 영원한 동력은 고통과 절망의 사유인 것이다.
이다희의 시편들은 절망의 사유를 보여주지만 그것의 표현은 아쉽게도 거친 그로테스크의 수준에 머문다. 고민정의 시편들은 도발과 도전의식이 약하다. 시인은 굳이 점잖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서샛별의 시들은 긴장된 사유와 패기에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나 조금 더 정련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시선을 끈 작품은 박성규(문예창작·3)의 「북어의 기원」이다. 그의 투고작 모두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그가 앞으로 성장할 시의 새로운 공간을 본다. 그의 상상력은 자유로우며, 그의 사유는 깊고, 다양한 파편들의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구성해가는 능력이 돋보인다. 추상과 구체, 현실과 상상의 벽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상상력이 앞으로 그의 시세계를 더 넓고 깊게 열어갈 것이다. 당선작으로 천거한다. 그의 글쓰기의 길이 더 외로워져서 더 깊어지길 빈다. 수상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시를 자신의 삶의 중요한 일부로 사는 다수의 응모자들에게도 다가오는 새해에 글쓰기의 큰 발전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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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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