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벌 써 죽었을 것이다 장애를 딛고 연극·뮤지컬 도전과 극단 창단
[행복]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벌 써 죽었을 것이다 장애를 딛고 연극·뮤지컬 도전과 극단 창단
  • 박하영 기자
  • 승인 2012.01.03 17:51
  • 호수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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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1급 남호섭(27세·공연예술학부·05입학)소울시어터 대표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벌 써 죽었을 것이다 장애를 딛고 연극·뮤지컬 도전과 극단 창단

 

⑭시각장애1급 남호섭(27세·공연예술학부·05입학)소울시어터 대표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전문 연주단 한빛예술단 ‘난 볼 수 있어’의 남자주인공, 속초의 연극단 ‘소울시어터’ 대표이사, 1,000회가 넘는 연극 무대. 17년 동안 굴곡진 연극 인생을 달리고 있는 시각장애1급 남호섭 씨의 이야기다. 연극에서만큼은 눈이 잘 보이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남호섭 씨를 만나보았다.

 

>> 30편이 넘는 연극에서 연기를 하고 연출까지 하며 수상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연극한 지 올해로 17년이 되었다. 6살부터 문화회관에서 어머니가 커피숍을 운영해 항상 연극을 보고 연극 하는 배우아저씨들이 주는 과자를 먹으며 자랐다. 그렇게 극단 굴렁쇠에 단원으로 들어갔고 초·중·고등학교 내내 연극반을 했다. 상도 많이 타서 강원도에서 일명 ‘연기 최고’로 불렸다. 하지만 고3 때 서울예대에 떨어졌다. 그리고 한 해를 기다려 다시 서울예대에 도전했는데 또 떨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상심하여 연극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두 번 떨어진 후 이번 연극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날 보러 와요’라는 작품을 했다. 그 연극이 나중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강원 연극제에서 1등, 전국 연극제에서 2등을 하였다. 그리고 최연소나이로 연기상을 받았고 그 상으로 단국대학교 공연예술학부에 들어왔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과대표를 하며 늘 동기 50명과 몰려다녀서 별명이 김정일일 정도였다. 연극이 아니었다면 대학에 갈 수도 없었고 다시 일어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 눈이 불편해진 것은 언제부터인가.
대학교 1학년 추석이 지난 뒤 바로 눈이 망가졌다. 자고 일어났는데 햇빛을 봤을 때 왼쪽 눈에 잔상이 있었다. 계속 없어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망막에 염증이 생기는 포도막염이라고 했다. 이렇다 할 치료방법이 없었고 잔상은 점점 커졌다. 나중에는 잔상이 왼쪽 눈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하지만 오른쪽 눈이 있었으니 버티며 계속 연극을 했다.
그러던 중 2008년, 연극 연습 중에 멀쩡하던 오른쪽 눈에도 잔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오른쪽 눈도 보이지 않을 것을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고, 눈물이 계속 났다. 결국 오른쪽 눈도 포도막염이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방황을 했다. 15층 친구 집에서 자살충동을 느껴 베란다 난간 위까지 올라갔었다. 하지만 그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이혼을 하고 고생을 많이 하신 어머니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아 자살은 못하겠더라. 그 이후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지금 현재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은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인한 잔상효과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고 뿌옇게 보인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계속 연극을 하고 있다. 나는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배우에게는 무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게 하는 절실함이 중요한데 눈이 망가지면서 그 절실함을 얻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연극에 보다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연극은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 한빛예술단 ‘난 볼 수 있어’ 공연은 어땠나.
대학 선배인 이우림 조명감독이 나에게 장애인들로만 꾸려진 ‘난 볼 수 있어’라는 뮤지컬의 주인공 역할을 제의했다. 일반 뮤지컬이었다면 거절했겠지만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뮤지컬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 승낙하였다. 그렇게 같이 무대에 설 배우들과 연습하며 매일 울컥했다. 그 분들에게서 “안 돼, 못 해” 라는 부정적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상황이 최악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제약을 만들고 있던 나는 그 분들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며 많이 느끼고 배웠다. 내가 무대에 선 것은 1,000회가 넘지만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후 눈물을 흘린 기억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나왔다.


>> 관객들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겠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진다. 연극 무대에서는 관객들을 호흡으로 느낀다. 관객의 즐거움, 지루함, 슬픔이 전부 호흡으로 느낄 수 있다. 박수소리 하나에도 감정이 들어있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연극 배우라 생각한다.


>>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는가.
극단 소통울림 소울시어터를 만들어 극단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소울시어터는 연극을 주로 하는데 시 낭송, 미술, 성악 등과 연극을 퓨전시켜 퍼포먼스를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입시가 끝난 고3들을 위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연극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개인 연기지도도 하고 지금은 ‘오장군의 발톱’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제2회 정기공연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거기에서 내가 연출을 맡고 연기도 한다. 


>>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극단을 만드는 것이 두렵지 않았나.
나는 나를 믿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제대로 연기하기 힘들다. 지금은 정기 연극 공연을 위해 매일 저녁 7시에 모여 속초 중앙시장 옥상에서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연습공간도 없었는데 중앙시장 상인회에서 공간을 빌려 주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극단을 꾸려나가고 있다. 24명의 극단 단원들도 오로지 나 하나 믿고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연극을 하고 있다. 단원들이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 고맙고 책임감이 든다. 내 가치관을 믿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굳게 믿는 것이다. 눈이 나빠진 이후로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잃을 것도 없는데 못할게 뭐있냐’는 식으로 밀어부친다.


>> 아주 어릴 적부터 연극만 해왔는데 연극 외에 도전하고 싶었던 것은 없었나.
연극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긴 하지만 다른 것을 해볼 생각은 전혀 없다. ‘D-day’라는 모노드라마 연극을 끝마친 직후 영화 오디션을 보러 간 적이 있다. ‘D-day’는 노르망디 전쟁에 참여한 한국인에 대한 연극인데 혼자서 1시간 30분 동안 꾸려나가는 연극이었다. 그 D-day 연극과 같은 노르망디의 한국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여 배우 오디션에 참여했다. 처음에 영화사에서 전화가 와서 서류 통과를 하였으니 보내준 대사 3개 중 하나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나는 3개를 전부 외워갔다. 그렇게 최종 오디션까지 모두 붙어 영화 계약까지 마쳤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친구 역할로 첫 영화를 꽤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계속 ‘눈이 이런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포도막염은 눈이 피곤하면 악화되기 때문에 눈의 피로에 절대적으로 신경을 써야한다. 결국 눈 사정 때문에 공식 일정을 이틀 남겨 두고 포기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이번에 강제규필름에서 만든 <My way>라는 영화였다. 


>> 많이 속상했겠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오디션을 포기했을 때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지만 이번에 영화가 나오니 마음이 착잡하긴 했다. 하지만 현재 속초에 나의 극단 소울시어터가 있고 집이 있고 어머니가 있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지금은 한발 물러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기회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머무를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 극단 소울시어터는 언젠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전국 순회를 돌고 해외진출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잘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속초의 소울시어터를 찾아오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다. 그렇게 계속 키워 나가 지방 극단이라는 한계를 소울시어터가 깨고 싶다. 뜻이 있으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출발을 지금 내딛었다.


>> 행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의 연기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 행복을 느낀다. 나로 하여금 누군가가 행복할 때 행복한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우시는 할머니도 있었고,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나를 통해 감동을 느꼈고 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를 통해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트레이닝 시키는 아이돌 신인배우가 나에게 연극을 배우며 처음으로 즐거움을 느꼈다고 큰 절을 했다. 그 때도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내 자신을 믿고 내가 하는 연기, 연극을 믿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나 하나를 믿고 무보수로 연극을 하는 단원들도 있다. 이렇게 나처럼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스스로 행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갔으면 한다.

박하영 기자 mint0829@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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