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년 ‘흑룡의 해’ 밝았다
2012년 임진년 ‘흑룡의 해’ 밝았다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1.04 02:41
  • 호수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은 색을 뜻하는 임(壬)과 용을 연상케 하는 진(辰)이 만나 ‘흑룡(黑龍)’으로 탈바꿈했다. 2012년 임진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다. 한해의 마지막에서 가장 큰 행사는 뭐니뭐니해도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들으며 차분한 마음으로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다짐하고자 보신각 일대로 모인다. 2011년의 마지막 밤 역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사람들 보신각에 모여 소원과 복을 빌었다. 단대신문이 가까이 가봤다.  <편집자 주>

▲ 새해 새벽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시민대표들이 '제야의 종'을 울리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청)

 

■ 새해 맞이하는 사람들
“4, 3, 2, 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일 0시 서울 종로 보신각 일대. 33번 울려 퍼진 제야의 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의 문을 열었다. 보신각 일대에 모인 10만여(경찰 추산) 시민들의 열기는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추위도 녹일 듯 들떠 있었다. 첫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사람들은 각자 새해 소원을 담은 ‘희망풍선’을 하늘로 올렸다. 종소리와 환호성 속에서 형형색색의 폭죽들이 새해 하늘을 훤히 밝혔다.

‘희망서울-시민이 희망입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올해 타종행사에서는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의장, 서울시교육감, 서울지방경찰청장, 종로구청장 5명의 고정 인사와 더불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6) 할머니, 조선왕실 의궤 환수의 공신인 혜문(38) 스님,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신영록(24·제주 유나이티드) 축구선수 등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뽑은 시민 대표 10명이 같이 종을 울렸다.

▲ 제야의 종소리에 맞춰 종로2가 방면 도로 위에서 시민들이 새해 하늘에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박노해 시인의 시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인용해 “희망찬 사람은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자신이 새 길이다”라며 “여러분 자신이 희망과 길이 되는 것을 적극 돕겠다”고 신년사를 전했다.

보신각 및 종로 일대는 한해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북적이는 사람들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통제를 위해 75개 중대 7,000여명의 전경이 배치됐지만 0시를 앞두고는 너무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보신각 입구 및 종각역 4번 출구를 막고, 지하철은 종각역에 정차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기도 했다.

▲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풍물패 ‘신명’의 학생들이 시민들과 어울려 새해맞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종로2가 방면 도로에선 0시부터 약 1시간 20분 동안 폭죽놀이가 이어졌다. 눈과 코가 따가울 정도로 매캐한 연기와 화약 냄새 속에서도 사람들은 신이 나서 폭죽을 쏘아 올리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풍물패 ‘신명’이 신명나게 치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외국인들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폭죽 천원, 캔커피 천오백원”을 외치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용산 IT업체에서 일하는 정영남(33) 씨는 “올해는 연휴가 많이 없어 아쉽다”며 “그래도 366일로 하루가 더 있는 윤달 해인만큼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오로지 축구 때문에 영국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로 축구마니아라는 오재욱(26)씨는 “올해가 용띠 해인만큼 한국의 ‘쌍용(이청용과 기성용)’이 펄펄 날아다니며 활약해줬으면 좋겠다”고 새해 소망을 전했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길바닥 위에서 거푸 큰절을 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던 대학생 권상훈(23)씨는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아 너무 기뻐서 거리로 나왔다”고 말해 시민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서울시는 31일 타종행사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지하철과 버스를 1일 새벽 2시까지 연장운행 했다.

■ 새해를 정돈하는 사람들
1시 정각. 사이렌과 메가폰이 울렸다.
“아아, 오늘 행사는 종료되었습니다. 차도에 계신 시민 여러분 양쪽 인도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삑, 삑, 삐익-.’ 전경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행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폭죽을 쏘며 새해를 기념하던 세종로에서 종로2가, 을지로1가에서 안국사거리 등 도로 네 곳은 전날 오후 10시부터 차량 진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이제 이곳을 치우고 다시 차량운행할 채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을 도로에서 몰아내느라 넓게 펼쳐선 전경들 뒤로 청소차가 바짝 뒤따랐다.

▲ 약 10만명의 인파가 폭죽을 쏘며 새해맞이를 즐기는 사이 폭죽 잔해, 깨진 유리병 등으로 거리에 쓰레기가 즐비해졌다.

전경들의 통제와 동시에 차에서 뛰어 내린 20여명의 환경미화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청소를 시작했다. 도로는 사람들이 쏘고 버린 폭죽 잔해와 깨진 유리병, 전단지 등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지하철 입구 천장 위에까지 쓰레기가 가득했다. 몇몇 취객들이 사람들이 모아 놓은 폭죽 잔해더미를 발로 차서 퍼뜨리고, 그걸 다시 집어 들고는 기념사진을 찍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환경미화원들 뒤로 종각역 9번 출구 인근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박한누리(41·여) 씨 등 몇몇 상인들이 나와서 쓰레기 치우는 걸 거들었다. 기자도 인도 쪽 청소를 도왔다. 박 씨는 “여기서 장사한지 6년째인데, 해가 넘어갈수록 쓰레기가 더 늘어간다”며 “새해 기분 내는 것도 좋지만 끝까지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 한해 시작이 좋게 나가는 것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 지역 상인들이 거리로 나와 환경미화원들을 도와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어지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박 씨처럼 자진해서 새해 거리를 정돈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새벽 3시 20분 쯤 종각역 번화가 안쪽으로 들어서니 한 할아버지가 혼자 빗자루를 들고 젊은이들이 줄서있는 클럽 입구를 쓸고 있었다. 골목 안쪽도 술병이며 종잇조각들이 대로변에 만만치 않게 어지러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연신 “저쪽으로 좀 비켜보라”며 젊은 사람들이 헤치고 쓱쓱 바닥을 쓸며 지나간 자리가 말끔하게 바뀌어갔다. 

▲ 지역 주민 김종규(77) 할아버지는 벌써 10년 넘게 매년 새해 새벽마다 거리로 나와 젊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고 했다.

“1월 1일만 되면 거리가 어찌나 지저분한지 말도 못해.”
김종규(77) 할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벌써 10년 넘게 매년 해가 넘어가는 1일 새벽에 종각 거리로 나와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고 한다. 그는 “누군가는 치우는 사람도 있어야지 않겠냐”며 다시 묵묵히 빗자루를 들었다.

보신각 인근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김광호(65) 씨에 따르면 환경미화원들은 청소차를 따라서 대로변 위주로 청소하기 때문에 골목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쪽 상인들은 매년 타종행사 후 시민들이 빠져 나간 새벽 2시부터 약 2시간 정도 쓰레기를 치우는 게 ‘새해맞이 행사’라고 한다. 김 씨는 “여기서 32년째 장사하고 있지만 매년 더하면 더했지 줄지는 않는다”며 “청소는 바라지도 않고, 취해서 경찰이랑 싸우거나 길거리에 토하지나 말아줬으면 좋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야의 종은 왜 33번 칠까?
조선 초기 때부터 유래된 타종의 의미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제야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타종은 조선 초기인 태조5년(1396년)부터 유래됐다. 지금처럼 시계가 없었던 조선 시대에는 낮에는 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밤에는 시간을 알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조정에서는 백성들이 밤 시간을 알 수 있도록 5시간을 초경·이경·오경으로 나누어 각 경마다 북을 쳐 알렸다. 이때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밤 10시경)과 통행금지가 풀리는 오경(새벽 4시경) 만큼은 모든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북 보다 소리가 큰 종로 보신각의 대종을 쳐서 널리 알렸었다. 이 통금·통금해제를 알려 도성의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4소문(혜화문, 소덕문, 광희문, 창희문)을 일제히 여닫기 위해 종을 쳤던 것에서 오늘날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유래됐다.

여기서 이경에 28번 치는 종을 ‘인정(人定)’. 오경에 33번 치는 종을 ‘파루(罷漏)’라고 했다. 28번의 종을 친 것은 우주의 일월성신 28별자리에 밤의 안녕을 기원한 것이고, 33번의 종을 친 것은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의 33천(天)에게 그날의 국태민안을 기원한 것이다. 즉 오늘날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까닭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시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남은 것이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김상천 기자
김상천 기자 다른기사 보기

 firestarter@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