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 영화가 선생인 시대
화경대 - 영화가 선생인 시대
  • <김일수>
  • 승인 2003.12.05 00:20
  • 호수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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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과제를 내고 이어 제출된 것들을 점검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대부분 영화 감상이란 거다. 몇 년 전만 해도 소설도 있고 연극이나 시 등을 읽고 글을 쓰던 학생이 꽤 되었는데 이젠 거의가 영화 일색이다.
굳이 생소한 서양 학자를 들어 말할 것까지는 없겠으나, 20세기 초반에 아놀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의 말미에서 영화의 위력을 예견하고 있다.
그는 서구 예술사를 기술하는 마지막 자리에서 앞으로 영화라는 종합예술이 크게 발전하여 다른 모든 예술 장르를 압도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하우저의 예견은 절반쯤 맞고 절반쯤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크게 발전하여 위력을 떨칠 것이라는 예견은 맞았지만, 영화가 최고의 예술 장르가 될 것이라는 예견은 분명 틀렸다. 오늘날의 영화는 하우저의 예상과는 달리 저급하고 상업적인 대중문화로서 번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환상적인 영상, 자극적인 음향, 그리고 충격적인 줄거리는 보는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 특히 젊은이들의 영화에 대한 선호는 폭발적이다. 그런 만큼 영화의 위력도 폭발적이다.
너무 큰 힘을 가진 것들은 위험하다. 태풍도 위험하고, 미국도 위험하고, 원자탄도 위험하고, 언론도 위험하고, 대통령도 위험하다. 그래서 큰 힘을 가진 것들은, 그 큰 힘이 함부로 작용하지 않도록 잘 조절되고 관리되고 억제되어야 한다.
너무 큰 힘을 가져서 위험한 것 중에는 영화도 포함된다. 아마도 오늘날 젊은이들의 가장 큰 선생은 영화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체험한다. 또 그들은 영화를 통해서 미적 감각과 정서를 형성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의 기준도 습득한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고 실제로 몇몇 젊은이들이 주유소를 습격한 사건도 있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예외적인 것이므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향이다. 영화는 실생활의 체험보다, 학교의 가르침보다, 자연의 질서보다 젊은이들의 정신적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젊은이들과 대중들의 큰 선생이 되었다. 더욱이 상업성의 요구는 영화로 하여금 점점 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흥미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또 도발과 전복과 변태로 이끌고 간다. 그래서 영화는 선생이긴 하되, 아주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선생이 되고 있다. 우리는 폭력과 선정, 전복과 변태를 예사로 찬양하고 가르치는 이 영화라는 위험한 선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 질서에 대한 도발과 전복은 예술의 한 기능이기도 하다. 예술은 어떤 면에서 기존 질서를 위태롭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기여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전복과 변태는 나름대로의 사회적 기능을 한다. 어떠한 반사회적, 파괴적 내용을 지닌 영화도 나름대로 변명의 여지는 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때 불쾌한 영화를 공권력으로 혼내 주려 했던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영화가 위험한 것이라 해서 그것을 철창에 가둘 수도 없고 외딴 섬으로 유배시킬 수도 없다. 우리는 영화의 위력을 외면할 수도 없고 영화의 위험성을 폭탄 제거하듯이 없앨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의 위력과 위험성을 잘 알고 그것에 대비하는 일뿐이다. 가장 좋은 대비책, 거의 유일한 대비책은 우리 사회가 영화에 대한 비판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영화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니 하는 말이다.
<김일수>
<김일수>

 <공주영상정보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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