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⑬이광수의 「무명」과 물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⑬이광수의 「무명」과 물
  • 김주언 (교양학부·강의전담 전임강사)
  • 승인 2012.03.07 13:24
  • 호수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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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물 한 잔 주는 일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⑬이광수의 「무명」과 물

누구에게 물 한 잔 주는 일

 

“하꾸고오상, 여기 물 좀 주세요. 도무지 먹지를 못하니깐 두루 헛헛증이 나고 목이 말라서, 물이 한 방울도 없구먼요.”
하고 얼굴 전체가 웃음이 되어 아첨하는 빛을 보인다.
“여기가 어딘 줄 아슈? 감옥살이를 일 년이나 해도 감옥소 규칙도 몰라? 저녁때 아니고 무슨 물이 있단 말이오?”
백호는 이렇게 웃어버린다. 정은 주전자를 높이 들어 흔들며,
“그러니까 청이지요.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 주는 것도 급수공덕이라는 말을 못 들으셨어요? 한 잔만 주세요. 수통에서 얼른 길어오면 안되오?” 
  ―이광수,「무명」 중에서

‘윤(尹)’이라는 인물이 있다. 하루에 많은 날은 스무 차례나 ‘똥질’을 한다. 스물네 번이나 설사를 하기도 한다. “먹고, 민을 못 견디게 굴고, 똥질하고, 자고, 이 네 가지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윤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한술 더 뜨는 인물이 등장한다. ‘정(鄭)’이라는 자는 윤에 의하면 “입으로 똥 싸는 더러운 병자”이다. 이 정의 상태가 지금 심상치 않다. 점심때 나온 5인분의 자반 멸치 한 사발을 거의 다 혼자 먹고 배탈이 났지만 감옥 안에는 마실 물이 없다. 자반 멸치는 실은 소금이 절반이었다.


윤과 정이 서식하는 이 인간동물원은 대체 어디에 있는 풍경인가. 「무명」의 작가 이광수는 식민지 감옥, 그중에서도 병자들을 수감하는 병감이라고 말하지만, 더러운 똥이 낭자한 이곳은 지옥임에 틀림없다. 서양 작가 밀란 쿤데라에 의하면 똥은 악보다도 더 다루기 힘든 신학적 문제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낙원에 있을 수 있었던 동안에는 똥을 누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실낙원에 산다고 이렇게 구린내를 함부로 풍기면서 막나가는 경우는 아무래도 심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정은 위장이 부르는 단념할 수 없는 식탐의 욕망 때문에 스스로 판 막장 속으로 들어가 자기파멸을 재촉한다. 그에게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의 위장이 바로 막장이다.
그러나 구제불능의 자기모순으로 꼬여가는 정이라는 인간은, 비록 한 모금의 물을 구걸하기 위해서지만, 극한까지 가본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종교적 질문을 우리의 신학적 문제에 추가한다. ‘급수공덕’이 그것이다. 누구에게 물 한 잔 주는 일은 쉬운 일이다. 어디 물뿐이겠는가. 차나 술을 살 수도 있다. 이런 것은 그야말로 다반사다. 그러나 이 이해다툼의 디스토피아에서 당신이 바로, 바로 당신이 시원한 물이나 혹은 따뜻한 물이 되어 누구의 갈급을 구원해준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좀 난감하다. 널려 있는 게 물이겠지만, 즉답을 삼가고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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