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세계화'도 잊지 말길
'한국어의 세계화'도 잊지 말길
  • 허재영(교육대학원·교육학과)교수
  • 승인 2012.03.13 19:40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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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학생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1915년 재일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행한 『학지광』제6호 ‘일본 유학생 소사(日本留學生小史)’에 따르면, 삼국시대 신라인 김약필이 일본을 방문할 때, 언어를 배우고자 세 사람의 유학생이 따라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신이 외국을 왕래할 때 통역관이나 학승이 중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일은 웬만한 역사책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유학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시점은 1876년 개항 이후가 될 것이다. 1880년대 신사유람단이나 수신사 파견과 함께 이루어진 유학의 역사는, 1907년에는 통감부의 지휘 아래 ‘학부 소관 일본 유학생 규정’이 발포되기에 이른다. 비록 국권 침탈기 국권 회복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근대 지식의 발달은 상당 부분 이 시기 서구와 일본에 유학했던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근대 지식인들의 유학 풍토에서는 몇 가지 문제점도 드러난다. 국권 침탈 직전에 발행된 『대한흥학회보』 제12호(1910.4.)에 실린 ‘일본에 재(在)한 아한(我韓) 유학생을 논함’이라는 글에서는 이 시기 유학생들에게 세 가지 풍토가 있었다고 기록했는데, ‘학문을 넓히고 지식을 익혀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고자 하는 사람’, ‘전문 분야만을 공부하여 자기의 삶의 풍요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 ‘수동적·기계적으로 세월만 허송하는 사람’ 등이 그것이다. 특히 아무런 준비 없이 유학을 떠난 학생들이 세 번째 유형의 유학생이 되는데, 이 시기 신문에는 이들을 질타하는 논설이 빈번히 실렸다.

오늘날 우리의 유학에 대한 학생들과 일반 사회인들의 의식은 어떨까? 대학생들에게 유학은 필요한 것인가? 유학을 간다면 언제가 좋은가? 이러한 것들은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수없이 제기하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배움에 왕도가 있을 수 없고, 배움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학생이라면 언제 어느 곳이든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학도 그 방편 가운데 하나이므로 유학의 필요성이나 시기에 대한 질문은 학생 스스로 선택하여 답을 얻을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대 지식인들이 부딪혔던 문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유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일일 것이다. 단지 외국어 학습만을 위해, 또는 스펙을 쌓아서 취업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유학을 떠나야 한다면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낭비스러운(?) 일은 아닐까? 물론 오늘날은 근대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인 계몽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더욱이 ‘글로벌’, ‘세계화’, ‘국제화’라는 슬로건이 난무하고, 어설픈 영어 강의나 토익 열풍에 휩쓸린 한국의 대학이 처한 현실을 고려할 때, 태서(서구) 각국처럼 동등한 지위에서 문화 발전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 근대 지식인들의 주장은 공허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을지라도 유학의 본질이 단순한 어학 능력 향상이나 스펙 쌓기에 그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세계화’나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시대적인 목표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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