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오도답파여행 22. 부(富)의 부산이 되거라
新오도답파여행 22. 부(富)의 부산이 되거라
  • 김재관(동양학연구원)연구교수
  • 승인 2012.03.13 23:59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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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늘에 가리웠던 부산, 이제는 빛날 시기
▲ 용두산공원에서 바라본 영도와 남항.

전술한 것처럼 이광수는 매일신보와 경성일보가 주관한 ‘동래해운대탐량단(東萊海雲臺探凉團)’에 합류하기 위해 ‘마산(馬山)’을 건너뛰고 ‘부산(釜山)’부터 찾았다. 부산의 외곽 지역인 ‘동래(東萊)’와 ‘해운대(海雲臺)’에서 「오도답파여행」의 여정을 이어가지만, 정작 본격적인 부산 탐방은 ‘탐량단’의 귀경 이후에서야 시작하게 된다. ‘탐량단’ 동행뿐만 아니라 여정의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며칠 휴가까지 가졌던 터라, 「오도답파여행」의 여정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釜山은 名勝이나 古蹟으로 玩賞할 곳이 아니라, 經濟上으로 硏究할 都市가 아닌가 한다.”는 진술처럼, 이광수는 부산을 경제적인 면 이외에는 거론할 내용이 없다고 토로한다. 그의 말처럼 이 도시는 근대 이후 우리 경제사의 면면을 압축하고 있는 곳이다. 개항 이전부터 부산포에 ‘왜관(倭館)’이 설치되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산은 상업·무역 중심의 도시로 발전할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왜관이 설치되어 일본무역이 이루어졌던 부산은 개항과 함께 여러 국가들이 각축을 벌이는 도시가 되었다. 특히 일본과 러시아는 절영도(絶影島: 오늘날의 영도)에 해군용 저탄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조차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부산의 상권은 일본자본에 의하여 장악되었다. 부산에 거류하는 일본인들은 나날이 늘어났고,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의 지위는 나날이 약화되고 있었다. 

이광수는 이렇게 일본자본에 눌린 조선자본의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조선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도 조선자본은 나날이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본자본의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는 부산이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최초로 희생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인 이점으로 이 도시는 소생할 수 있는 있다고 전망한다. 이광수는 영남 일대의 지주와 상공인들이 경남은행(현재의 경남은행과 다름)과 백산상회(白山商會) 등을 설립하여 조선자본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하는 것에 고무된다. 그는 이 회사들이 영주동(瀛州洞)과 초량동(草梁洞)을 벗어나 중심지역인 본정(本町, 오늘날의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 일대)에 큰 점포를 내고 영업을 하는 것을 기뻐했다.  

그렇지만 일본으로 미곡을 수출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했던 이들 회사들의 한계는 뚜렷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위장 창업한 백산상회의 적자는 당연한 귀결이라 치더라도, 조선총독부의 회사령으로 다른 산업 영역으로 진출하기도 어려웠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사의 후원을 받아 「오도답파여행」을 하고 있던 그의 처지를 고려하더라도, 그는 조선자본의 붕괴현상을 안이하게 판단했다. “競爭에 견디어 낼 資格 없는 者는 淘汰가 되고, 時勢에 따라서 精神을 바짝 차리는 사람은 新生氣로 蹶起된다.”고 그는 쓰고 있지만, 그의 생각처럼 일제의 무단통치가 자행되는 조선에서 조선자본의 발전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부산의 중심 상업지였던 장수통(長手通: 오늘날의 광복동 일대)은 오늘날도 부산의 중심상업지역이다. 개항 이후 부산으로 몰려온 일본인들은 초량왜관(草梁倭館)이 있었던 곳에 거주하면서 용두산(龍頭山)에 신사를 세워서 이 일대를 일본인들의 거리로 만들었다. 이광수는 이곳에서 조선인 유지들을 만나 “富의 釜山이 되소서.”라는 부산 방문의 소감을 남긴다. 그렇지만 부산의 산업이 융성한다고 해서 조선인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초량 앞 바다와 자갈치 일대를 매축(埋築)하고 새로운 항만과 시가지를 조성하는 등, 일본자본은 증식되는 과정에서 조선인은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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