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사람들을 만나다 1. ‘시작’의 아이콘, 목욕탕을 재정비하다
새벽사람들을 만나다 1. ‘시작’의 아이콘, 목욕탕을 재정비하다
  • 이영은 기자
  • 승인 2012.03.14 18:06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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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찜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를 누구보다 일찍 시작한다

① 찜질방 관리자의 새벽

목욕재계. 찜질방은 묵은 때를 벗겨내면서 몸, 그리고 마음까지 새로 단장하는 곳이다.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하는 경기도 시흥시의 어느 찜질방. 이른 새벽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찜질방을 쓸고 닦으며 구슬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목욕재계를 한 듯, 말끔해진 찜질방 곳곳에 그들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편집자 주>  

 

 

‘시작’의 아이콘, 목욕탕을 재정비하다

‘삶을 찜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를 누구보다 일찍 시작한다


그냥 차근차근 순서대로 하다보면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지요.”

오후 5시 30분부터 오전 5시 30분까지 하루 12시간을 근무한다는 이 씨(54). 그는 탕 청소부터 사우나, 수면실, 탈의실 등 찜질방의 모든 곳을 청소하는 목욕탕 총 관리자다. 캄캄한 새벽 5시 30분이 퇴 근시간이라니 언제 자고 언제 일을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왔다. 5시 30분에 퇴근하고 나서 오전 12시 30분까지 이 씨는 잠을 잔다. 일어나면 점심을 먹고 찜질방 내에 있는 헬스장으로 향한다.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쉬다보면 어느새 다시 오후 5시 30분. 출근시간이다. 이 씨의 올빼미 생활은 어느덧 1년이 됐다.

“낮에 자는 2~3시간이 밤에 자는 20분만 못한줄 뻔히 아는데 누가 야간일이 좋겠어요.”

직업소개소에서 ‘찜질방 관리인’이라는 직업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이 씨는 망설였다. 남들이 잘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자는 거꾸로 생활의 고충을 이 씨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중무휴 찜질방이기 때문에 이 씨는 코앞의 영등포가 고향인데도 명절에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새벽 퇴근시간이 되면 피곤에 지쳐 쓰러지듯 잠든다. 때문에 집에 들르는 주말 외에는 찜질방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아 제대로 된 자기시간을 가지기도 어렵다. 바깥 공기를 잘 쐬지 못하는 이 씨는 건강을 생각해 야식을 최대한 먹지 않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한다. 그래서 그는 딱히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대신 별다른 일이 없을 때 잠깐씩 눈을 붙인다. 이 씨는 “그 잠깐의 5분 10분이 나에게는 잠을 깨우는 데 더 효과적”이라며 잠을 이겨내는 그 만의 비법을 설명했다. 


그에게 청소를 빨리 할 수 있는 노하우를 물어보자 “청소를 빠르게 할 필요가 있냐”며 “순서대로, 차근차근 꼼꼼하게 청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탈의실이 배치돼 있는 곳은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목욕탕 안은 닦기만 한다. 기자의 성별이 여성인지라 아쉽게도 이 씨가 남탕 청소를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엄청나게 넓은 150평을 혼자 청소한다니 “밖에는 그냥 청소기를 돌리면 되고 탕 안은 그냥 닦으면 되죠”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그가 대단해 보였다.


그런 그에게도 힘든 곳이 있다. 바로 ‘벽’이다. 벽에는 물곰팡이가 피기 때문에 잘 닦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는 희소식이 있다. 전에는 남성들에게 무제한으로 제공되던 수건의 수가 여성들과 같이 2장으로 제한됐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경우가 많지 않는데, 어린애들이나 학생들은 아직 그런 개념이 없는지 머리 닦고 하나 버리고, 몸 닦고 또 하나 버리고 해서 수건 양이 어마어마했어요. 수건을 1인당 2장으로 제한하고 나니까 양이 확 줄었어요. 덕분에 이제 일도 좀 수월해졌구요”  이 씨와의 인터뷰를 마친 새벽 1시 30분쯤, 목욕탕 내 청소를 담당하는 권 씨(37), 전 씨(38) 자매가 도착했다. 청소 일을 하기엔 젊어 보이는 둘에게 나이를 물어보자 전 씨가 “우리는 30대 중반이에요”라고 대답하고는 권 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맞아 네가 청소아줌마계에서는 제일 어릴 거야.”

① 청소를 시작하기 전 의자와 쓰레기를 한 데 모으고 있다.

 


출근시간은 원래 새벽 2시부터다. 하지만 그들은 30분 정도 일찍 와서 청소준비를 시작한다. 청소하기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고무장화를 신는다. 목욕탕 청소는 냉탕에 있는 물을 끌어내야 하는데, 기계로 하기 때문에 감전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목욕탕 문을 열자 습한 열기에 숨이 턱 막혀왔다. 사람들이 다녀간 뒤 목욕탕 안은 더러웠다. 곳곳에 비누 때가 껴있다. 비누를 올려둔 곳엔 녹아내린 비누가 들러붙어 있었다. 그 밑에도 비누 거품이 말라붙은 자국이 얼룩덜룩하다. 샤워기도 꽂혀져 있는 것 반, 널브러져 있는 것 반. 거울은 하루 동안의 물때가 고스란히 껴있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버려져있는 일회용 비닐들, 먹고 남은 쓰레기 투성이다. 긴팔 긴바지를 입고 취재하던 기자는 결국 더운 습기 때문에 짧은 옷으로 갈아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들어오는 시간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빨리빨리 해야 해요.”

자매가 바삐 몸을 움직인다. 주어진 2시간 동안 둘은 4개의 탕과 바닥, 앉아서 씻을 수 있는 개인용 목욕시설 모두를 청소해야 한다. 평소 ‘바가지나 의자, 탕은 매일 청소하겠지’ 생각은 했지만 직접 보니 이 넓은 목욕탕 전체를 매일 꼬박꼬박 청소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두 시간 내에 끝내기에 버거운 양이 아니냐고 묻자 권 씨는 “사실 우리 둘이 아니었으면 끝내기 힘들었을 거예요”라며 “그래서 생활의 달인 나가려고했는데…”라고 농 섞인 대답을 하며 웃었다.

사실 둘은 2년 동안 매일같이 호흡을 맞춰 온 최강 콤비다. 목욕탕 청소 일을 시작한 지는 전 씨는 3년, 권 씨는 2년 반.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각자 맡은 일을 척척 진행한다. 제일 먼저, 둘은 널리 퍼져있는 쓰레기통들을 한데 모으고 개인용 목욕시설에 물을 한 번씩 끼얹는다. 그 다음 권 씨는 비눗물과 청소도구를 사용해 탕 밖의 걸쳐 앉는 부분과 겉면을 닦는다. 그동안 전 씨는 바가지와 의자를 모아와 닦기 시작한다. 바가지를 쌓아두고는 하나하나 설거지 하듯 닦고 큰 탕에 던져버린다. 큰 탕 하나만 물을 빼지 않고 남겨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바가지를 마지막 것까지 다 닦고 나면 탕에 둥둥 떠 있는 바가지들을 씻겨 한 군데에 정리한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의자를 닦기 시작한다.

② 한 데 모은 바가지를 닦고 있는 전 씨

 


탕 밖을 모두 닦은 권 씨가 물이 다 빠져나간 탕 안을 구석구석 닦는다. 그리고는 밖의 바닥도 닦고 비누칠을 한 모든 곳을 물을 뿌려 씻겨 내린다.  그 다음은 벽을 닦을 차례다. “언니, 역시 벽에는 락스가 짱이야.” 벽의 물때를 닦는 권 씨가 전 씨에게 말했다. 전 씨는 의자를 모두 닦고 개인용 목욕시설에 붙어있는 거울을 닦고 있다. 전 씨가 “오늘은 기자님이 있어서 안 무섭고 좋네”하고 농을 던진다. 알고 보니 발가벗은 남자가 청소하는 도중에 무작정 들어온 게 한 두 번이 아니란다. 전 씨는 “그래서 항상 초식동물처럼 작은 소리에도 쫑긋쫑긋 예민하게 신경쓰며 일을 한다”고 말했다.

 

③ 비누칠한 벽과 탕을 물로 씻겨내고 있다.

 

 새벽 3시, 청소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다 돼가자 수다스러웠던 둘의 대화는 어느덧 끊겨있었다. 목욕탕에서 요구르트나 우유를 몸에 바르고, 얼굴에 팩을 하고, 염색을 하는 여자들의 흔적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다. 권 씨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더러운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른다. 일회용 샴푸와 린스 등의 껍질들은 바닥 여기저기에 붙어 있어 고스란히 일이 된다. 전 씨는 “치울 게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무렇게나 펼쳐져 버려져 있는 생리대를 치우는 게 가장 싫다”고 말했다.

④ 물이 빠진 탕안을 비누칠하고 있는 권 씨.

 

연중무휴인 찜질방, 그것도 새벽에 매일같이 일어나 청소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자 권 씨는 “하루에 5시간에서 6시간을 자지만 남들이 잔만큼은 못하다”고 말했다. “지금이 4시, 제일 푹 자고 있을 땐데 우리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남들과 비슷한 시간을 자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 씨는 또, 고향집이 서울인데도 명절날 집에 찾아가지 못하는 서러움을 털어놨다.

그런데도 참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일이 시급이 조금 센 이유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남는 시간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둘은 목표가 같았다. “젊을 때 고생해서라도 돈을 많이 모아 나중에 성공하는 거예요.”

모두가 잠든 시간. 시작을 준비하는 목욕탕을 재정비하는 그들은 오늘도 새벽에 집을 나선다.

 이영은 기자 lye0103@dankook.ac.kr 

이영은 기자
이영은 기자

 lye010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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