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가 사라져간다
대학문화가 사라져간다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3.20 21:49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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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한파 된서리에 동아리도 취업 준비집단화
대학문화의 꽃 동아리가 스펙을 쌓으며 취업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변해간다. 취업률을 올려야 하는 대학 측에서도 취업동아리 지원에 집중하며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반면 순수 학문 연구나 예술·레저 분과 동아리들은 신입생과 대학의 외면에 울상이다.

우리 대학 취업동아리 티핑포인트의 신입회원 모집 과정은 실제 기업 채용과 착각될 정도로 흡사하다. 1차 서류전형·2차 면접으로 신입생을 뽑는 이 동아리는 매 학기 신입생 모집에 앞서 기업설명회 형식의 공개세미나를 갖는다. 운영진도 전략·기획팀, 홍보팀, 인사팀, 총무팀 등 일반 기업체들과 다름없이 구성돼 있다.

매주 정기세미나를 통해 직무설계PT, 인성면접, 집단토론 등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이 동아리는 동아리 내에서도 경제·금융 연구, 토익스피킹, 시사스터디 등의 여러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동아리 회장 조수아(법학·4)양은 “무조건 스펙만 쌓는 것이 아니라 일반 동아리처럼 유대관계 역시 다질 수 있어 취업동아리 활동에 만족한다”며 “취업동아리는 학생들의 참여와 대학의 지원이 풍부해 운영이 수월한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취업 문턱이 높아짐에 따라 이런 취업동아리들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도 높아졌다. 한 학기 30명을 뽑는 이 동아리에는 지난해 1학기에 87명, 2학기에 33명이 지원했고 학기마다 평균 50명 이상이 지원한다. 지난 4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 61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6.7%가 ‘취업에 도움이 될지를 고려해 동아리를 선택 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는 취업 관련 동아리가 39.7%로 가장 많았고, 문화·예술 동아리가 32.3%였다. 나머지는 스포츠(12.7%), 취미·오락(9.6%), 봉사(5.7%), 종교(1.3%) 순이었다.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대학측도 적극적으로 취업동아리를 지원한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일반 동아리와 별개로 취업동아리를 따로 관리·지원하고 있다. 분야별 7개 취업동아리를 운영하는 우리 대학의 경우 학기당 20만원의 활동비 및 각종 행사 비용·기업 인사담당자 특강 주선과 강의비·세미나실 등의 장소 및 기자재 등을 지원한다. 건국대는 ‘KU 스마트 잡 챌린지’ 프로그램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취업동아리를 육성하고 있다.

현재 19개의 취업동아리에 5개월간 매월 60~100만원의 지원비를 주고 경진대회를 통해 최대 200~300만원의 시상금도 추가로 준다. 건국대 김종필 취업지원팀장은 “취업 관련 정책은 지원하려 해도 학생들의 관심이 부족해 효과가 미비한 경우가 많았던 반면 취업동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며 “3~4년 안에 5~60개까지 취업동아리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에 ‘꾼’이 사라져간다
대학 마다 취업률 올리기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가운데, 건국대는 ‘KU 스마트 잡 챌린지’ 프로그램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취업동아리를 육성하고 있다. 건국대 취업동아리 ‘다이렉트취업’의 조정욱(경제·4)회장은 “매주 자기소개서 쓰는 연습과 기업 분석, 기업 탐방, 시사 이슈 토론 등을 하고 시사용어, 한경테셋과 토익 문제는 매일 풀어본다”며 “일반 동아리 활동도 해봤지만 내가 어떤 분야에서 노력했음을 증명할 결과나 기록을 남길 수 없어 허탈했었다”고 말했다.

반면 스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취미나 흥미 위주의 동아리들은 정 반대의 사정이다. 수도권 대학에서 취업동아리가 아닌 일반 동아리가 받는 지원금은 학기당 20~30만원의 수준이다. 부족한 지원금 외에도 기자재나 동아리실 등도 열악한 곳이 많다.

건국대 심리학동아리 ‘피스’의 회장 이황용(생활체육·3)군은 “동아리실과 학기 말에 활동보고서를 내고 나서 받는 15~30만원이 지원의 전부”라며 “대학에서 취업동아리만 신경 쓰고 기존 동아리들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인라인스케이트 동아리 ‘에어로’의 회장 김남기(경영·2)군도 “레저 분과 회의에서 스펙에 도움 안 되는 동아리들은 갈수록 신입생 유치가 어렵고 대학의 지원도 미비하다는 불만이 항상 나온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숙명여대 학생은 “동아리실에 냉방시설이 아예 없고 난방시설은 낡은 라디에이터뿐이라 겨울에는 담요, 여름에는 집에서 가져온 선풍기로 버틴다”며 “심지어 동아리 세 곳이 방 하나를 나눠 쓰기도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성신여대는 동아리 지원금이 아예 0원이다. 동아리연합회와 대학 간의 마찰 때문이다. 이 대학 극예술연구회 김소진(미디어커뮤니케이션·2)양은 “공연 전 근처 커피숍, 학원, 병원 등 상가를 돌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은다”며 “학교 지원이 없어 운영이 어렵고 신입생들도 정들만하면 나간다”고 했다. 그는 “힘들어서 나간다고 해놓고 곧바로 취업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도 봤다”고 말했다.

경희대 이한미루(사회학·4) 총동아리연합회장은 “1년 지나면 신입생의 반 이상이 사라지는 게 요즘 동아리의 현실”이라며 “중앙동아리 뿐만 아니라 단과대 동아리도 취업과 스펙에 도움 되는 동아리로 사람이 몰리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지난해 아주대 동아리연합회장으로 활동했던 안광수(신소재공학·4)군도 “회의 때마다 예술이나 취미 위주 동아리는 점점 새내기 모집이 어렵고 해가 갈수록 분위기가 죽어간다는 고충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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