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사설]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 단대신문
  • 승인 2012.03.20 21:50
  • 호수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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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다. 설레는 계기임에도 대학은 그럴 여유가 없다. 이유는 대학생들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다. 핵심은 취업문제이다. 이제 취업문제는 대학 구성원 모두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이 되었다. 일자리 창출의 기본적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 있다. 그럼에도 기업과 정부는 대학에 그 짐을 사실상 떠넘기고 있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의 배제, 즉 사람을 쓰지 않고 기계로 대체하는 것, 그리고 쓰더라도 소수를 제외한 취업 희망자들을 단기간의 계약형태로 부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자본은 이윤을 최대화하고자 한다. 자본이 이렇게 처신하는 배경에는 국가, 즉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탈규제니 효율성 제고니, 자유시장이니 하는 이름으로 공공적 규율집행자로서의 역할을 정부가 스스로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불투명하다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미래일 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일 순위가 공무원이라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조사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사회의 역량이 이렇게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고 이 틈을 타서 번성하는 것이 온갖 위로의 말씀들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위안서들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이렇게 남루한 시대의 초상이 있다. 궁핍한 사회에서의 삶이 처절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가 시작된다. 사회는 따라서 구성원들을 홀로 있게 놓아두지 말아야할 의무가 있다. ‘홀로 놓아두지 않는다’는 말은 간섭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와 경제를 책임지는 집단인 국가와 자본이 그 구성원들을 버리지는 않는다’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구성원 각자에게 심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리고 그 국가와 함께 정치경제를 책임지는 자본이 그러한 신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4월의 총선,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복지’가 긴급한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한국사회가 일정하게 인식한 징표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상황이 이러할 때 적어도 대학구성원, 특히 불투명한 미래라는 정신적 압박을 가장 앞에서 온 몸으로 받아내는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요체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것의 출발은 청년들에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이들과 함께 나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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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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