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실리라는 이름의 철책
[백색볼펜] 실리라는 이름의 철책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3.20 21:52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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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보다 이산가족이 먼저다

◇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이렇게까지 끓어오른 게 조금 당황스럽다. 우리는 남북의 문제를 지금껏 인도적 측면에서 바라봤다고 말할 수 있는가. 탈북자 문제에 앞서 왜 아무도 늙어 죽어가는 이산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가. 어쩌면 입에 발린 뻔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지 모른다. 실리라는 것이 참 얄궂다. 애타는 이산가족의 울음과 굶주린 북한 어린이의 신음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싶다. 취업이다 뭐다 안 그래도 숨 차는데, 당장 통일이 되면 북한 경제까지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별 수 없는 우려가 앞서는 게 씁쓸하다.

◇ 이기심야말로 남과 북을 갈라놓는 철책일 것이다. 일단 ‘내 밥그릇’ 생각이 들고 나면 대의는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매년 국가에서 실시하는 통일 국민여론조사에서 1997년에는 국민의 97%가 통일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는 50%대까지 떨어졌다. 그중 26%는 통일을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통일 찬성자들 중에서도 ‘통일이 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내 세대에는 싫다’는 의견이 상당수다. 우리가 제2의 서독이 될까봐 불안해하는 눈치다. 전쟁세대가 사라져가면서 통일은 인도적 문제보다 경제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따르면 이산가족 등록자 12만8천여명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은 이제 8만명 정도다. 이들 중 3만 5천명 이상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80세 이상 노인이다. 통일 문제는 결국 경제와 성장이라는 폴더에 들어갈 것이다.

◇ 결국 또 밥그릇이라니, 그래서 허탈하다. 경제와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모든 잣대가 그놈의 밥그릇이라는 사실이 안쓰럽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실리에 함몰되고 이념에 매몰돼서 분단국가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끝도 없이 편을 가르고 우리끼리의 싸움에 여념 없다. 영남과 호남, 진보와 보수, 여당 야당, 강남과 강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북통일 이전에 남남통일도 언감생심이다. 한국의 통일은 남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다.

◇ 철책 너머의 아들 얼굴을 그리다 늙어서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경제라는 말은 참 우스울 것이다.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그래서 얄밉다. 탈북자 강제북송하지 말라고 연일 시위하고 어떤 정치인은 단식하다 쓰러지기까지 하는데 왜 아무도 이산가족이 만나게 해달라고 시위하는 사람은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탈북자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어째서 이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가. 이산가족들은 아무리 젊어봐야 70대 노인이다. 시간은 이미 부족하다. 평생을 그리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버지와 딸이 만나 부둥켜안고 울음을 토하는 일을 위하는 사람이 없다.  <칙> 

김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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