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탐구생활 ⑰ 점역교정사 이은혜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소장
직업탐구생활 ⑰ 점역교정사 이은혜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소장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2.03.21 00:41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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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로 세상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는 책을 본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과 우리의 꿈을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느낀다. 책에 존재하는 모든 얘기를 손의 감각을 통해서 느낀다.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글자를 점자로 번역하는 ‘점역교정사’.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수십 권의 점자책으로 번역하고 있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이은혜 소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점역교정사. 이은혜(39) 소장은 이 직업을 “점자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점역교정사는 책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글자를 점자로 번역해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사실 점역사, 교정사가 되기 위한 자격증이 ‘점역교정사 자격증’ 하나여서 그렇지 점역사와 교정사는 다르다. 글자를 점자로 번역하는 사람인 이은혜 소장의 직업은 정확히 말하자면 점역사다.

 그녀가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우연히 본 구인공고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일을 알고 찾아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하지만 운명이었는지 모집공고를 보자 꼭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점역교정사라는 생소한 직업 탓인지 그녀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맨 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특히 전 음악전공자라 음악 점역을 하거든요. 음악 쪽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금 나사렛대에 계신 이상재 교수님께 많이 배웠죠.”

 어렵게 배운 만큼 보람도 큰 직업이었다. 그녀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한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회사로 박스 하나가 배달 됐어요. 뭔가 싶어서 풀어봤더니 시각장애인 학생이 보낸 소포였어요.” 그 소포에는 포도 한 박스, 4.5 만점에 가까운 성적표와 복지관에서 번역해 준 점자책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때 느낀 감동은 정말···.” 그녀는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점자악보의 경우 세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번역한 점자악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해진다고 한다.

 점역을 하면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았다. 작가가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쓰듯 점역사도 시각장애인을 생각하며 점역해야 한다. “아직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죠.”

 그러나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한 해에 출판되는 책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또 책을 번역하기 위해 한 글자에 필요한 점자의 양은 2.5배다. 그렇다보니 한권의 전공 책을 점역하면 약 20권의 점자책이 나온다. 출판되는 책에 비해 인력은 한정되다보니 모든 책을 점역하기에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점역한 책을 보내주기로 한 날짜가 있어서 검토하는 것도 힘이 든다.  

 이런 어려운 점들 때문에 점역교정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빠른 시간 내에 책을 모두 이해하고 점자로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또한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높지 않아서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우직하게 직업을 지켜나갈 사명감도 필요하다. 그녀는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면 좋은 직업이에요.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고 있거든요”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점역교정사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며 이 직업을 꿈꾼다면 자격증에 도전해보라는 말도 남겼다.

 10년 이상 점역사 일을 한 그녀이지만 아직도 점역은 어렵게 다가온다. “사실 시각장애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며 점역사 선배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선배가 저에게 그랬어요. 완벽한 점자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하하하 저는 아직도 멀었어요.”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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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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