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충무동 새벽시장 안에는 '활어같은 삶'이 있었다
새벽 2시 10분 전. 모두가 깊게 잠들어 있을 시각. 새벽을 밝히는 빛이 하나 둘 켜지는 그곳은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 위치한 ‘충무동 새벽시장’이다. ‘충무동 새벽시장’이라 크게 쓰여 있는 정문을 지나 시장을 살펴보니, 농산물을 실은 큰 트럭들이 가게 앞에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바삐 오가는 상인들의 활기로 장이 열리기도 전에 생기가 가득했다. 1974년에 문을 열어 햇수로 40여 년이 된 충무동 새벽시장은 매일 새벽 2시경이면 각 지역에서 올라온 농수산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편집자 주>
아직 몇 되지 않는 빛을 따라 시장을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우측 골목 모퉁이를 도니 물 먹은 파래를 한 가득 옮기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가게에는 미역, 파래, 다시마 등 짭조름한 바다 향이 물씬 풍기는 해산물이 놓여있었다. 기자가 이름을 물어보니 할머니는 “내 이름은 워디다 쓰려고 한댜?”라며 수줍은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혔다. 어찌나 부끄러워하던지, 몇 번을 설득한 끝에 할머니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35년 동안 매일같이 1시에 일어나 장사를 준비한다는 박인옥(69)할머니. 매일 3~4시간밖에 못자지만 이 장사로 5남매 대학 등록금도 마련하고 시집, 장가도 다 보냈다.
박인옥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중 어디선가 “여기는 뭣 하러 왔다냐?”며 무서운 인상의 허 천(72)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일터로 기자의 팔을 잡아 당겼다. 한 상점 모퉁이에 간판도 없이 자리 잡고 있는 할아버지 장사 터에는 이행자(70)할머니가 한창 장사를 준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여기서 자리 잡고 일한지는 40년째. 지금은 막내아들에게 물려 줄 준비를 하고 있다. “막내아들이 교육 받으며 맡은 지는 몇 년 됐는데도 빚만 늘어가니… 가게 간판 하나 제대로 못혀고…그러니 할매가 아들만 보면 비기 싫다 하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대형마트만 찾기 시작하면서 시장을 찾는 손님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시장 사람들은 자신을 골배이(골뱅이의 부산 사투리)라고 부른다. “제 때 밥도 못 묵고 골병이 들어서 그런게지. 장사도 안 되는데 약 값만 늘어가고 있어.” 허 천 할아버지의 한숨이 새벽시장 공중에 흩어졌다.
“3~4년 뒤면 떠나야지.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해져 고생하고 계신 부모님의 모습이 겹쳤다.
어느 덧 시간은 새벽 3시 30분. 시장이 가장 활발할 때다. 시장은 아까와는 다른 세상 같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여기 저기 켜진 전등과 싱싱한 농수산물, 빛깔부터 입맛을 다시게 하는 반찬들, 따뜻한 몸을 녹여줄 이동 찻집까지. 다양한 상점이 손님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따뜻한 인정을 품고 시장의 이곳저곳을 누비다 베테랑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송창복(50)씨를 만났다. 새벽시장에 20~30년 이상 된 베테랑이 많아 명함도 못 내민다는 송 씨. 그의 경력은 지금 가게에서는 3년, 시장에서 일한지는 10년 정도다. 납품을 전문으로 한다는 송 씨가 일하는 가게는 김밥천국을 처음 만든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김밥천국 판권을 사장이 갖고 있다 보니 부산 일대 김밥천국을 모두 납품하고 있다. 김밥천국 짝퉁이 아닌 진짜 김밥천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새벽시장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여기 사람들은 순수하고 부지런해. 그리고 알짜배기인 사람도 꽤 있어.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냥 봤을 때는 잘 모르지만 퇴근할 때 외제차를 끌고 가는 사람도 있어.” 솔직한 화법만큼이나 유쾌한 송 씨는 시장이 어렵긴 해도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시장이라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주소를 적어주며 꼭 신문 한 부를 보내 달라는 송 씨의 말에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수십 년 일한 상인도 있지만 시장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상인도 있다. 대학생으로 비유하자면 새내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장에 입문한지 한 달째라는 고유정(40)씨는 추위에 몸을 녹여줄 차와 토스트, 과일주스 등을 판다. 시장의 막내인 고 씨의 걱정은 나이 많고 경력도 많은 다른 상인들이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큰 고민은 새벽시장을 시작하면서 부족해진 잠이다. “새벽에 눈 뜰 때마다 후회를 했어. 새벽장사다 보니 잠이 부족한데, 내가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호호홍” 어려움도 많지만 고 씨가 새벽시장에서 느끼고 얻은 것도 크다. 새벽시장에 나오면 ‘살아있다.’ 말 그대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고씨. “20~30년 동안 남들 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 해 온 분들을 보면 ‘아, 내가 잘 못 살았구나…’싶기도 해. 하하하하하” 고 씨의 가게에서 마셨던 맛있는 율무 차만큼이나 고 씨의 맛깔 나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새. 아직도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충무동 새벽시장이 죽어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곳은 살아있다. 사람들의 온정이 넘쳐나고 시장 안에는 그들의 기쁘고 슬픈 수많은 사연이 있다. 이것을 느끼고 들어 본 사람들은 말한다. “충무동 새벽시장은 살아있다. 반짝반짝.”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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