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인, 누구를 위한 정치 참여인지 되새겨야
청년 정치인, 누구를 위한 정치 참여인지 되새겨야
  • 엄기표(교양기초교육원)조교수
  • 승인 2012.03.27 15:04
  • 호수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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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청년 정치인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다. 몇 년 전에도 지금의 상황 못지않게 기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패기 있고 야심찬 젊은 정치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에 의한 정치 사회 변화가 모든 계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두를 위한 정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현실 속에서의 정치는 그러지 못했다. 그들도 정치판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청년 정치인 또는 청년 후보 등에 대한 용어의 적합성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왜, 누구를 위해서 급부상하게 되었는지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요즘 많은 청년들이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기가 꺾여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위한 배려가 적었던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 그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회가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현재의 악조건 상황이 고착화되어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분출하는 힘이 저항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소외와 차별의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저항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양극화는 청년들을 더더욱 나서게 하였다. 서글픈 일이지만 청년들의 의사나 요구 조건을 기성 정치권이나 다른 계층에 기대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챙겨야만 하는 구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시대나 분출하는 힘은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으며, 거기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변화는 필연적이다. 우리 역사 속에도 많은 정치 참여 청년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신라시대 화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화랑들은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심신을 단련하면서 학식을 익히고 사회를 선도하였다. 화랑도는 개인의 안녕과 영화를 넘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었으며, 결국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이처럼 신라시대 화랑도는 개인이나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미래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참여하였고, 신라 사회를 리드해 나갔던 것이다.

청년 정치인들은 젊고 신선하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정성으로 다가서는 인내와 열정으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정치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기존 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 야합하거나 일시적 변화가 아닌 먼 미래와 공리를 위하여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청년 정치인들의 참여가 소외받고 좌절하는 청년들의 미래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에 의하여 그들을 이용하는 기성 정치인들을 위한 나섬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분명한 줏대와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청년 정치인, 그대는 자신을 위한 것인지, 모두를 위한 것인지 꼭 되새겨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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