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1억 년 전 옛날에
[백색볼펜] 1억 년 전 옛날에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4.04 12:25
  • 호수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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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하니, 까치, 영심이는 어떻게 됐을까?

◇ 너무나 그리워, 글썽이던 둘리가 엄마를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보고픈 엄마 찾아 진짜 1억 년 전으로 모두 함께 떠난 그날. 초조해진 초등학생은 눈이 동그래지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둘리야~ 둘리야~. 둘리 엄마가 안 그래도 긴 목을 더 길게 빼고 둘리를 찾는 걸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다리를 떨었다. 항상 불만이었던 짧디 짧은 만화 방영시간이 그날의 트라우마로부터 지켜줬다고 나는 믿는다. 둘리 엄마는 너무 느렸고, 나는 그때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강한 불안과 초조함과 안타까움에 빠져 숨이 찼다.

 

◇ 이어진 후반부 장면을 나는 아직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분노가, 생각만 해도 또 올라온다. 깐따삐야! 난데없이 울려 퍼진 도우너의 경쾌한 한 마디에 나는 넋이 나갔다. 타임 코스모스에 발이 묶인 채 질질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엄마와 멀어지던 둘리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미안 타임 코스모스가 고좡났어 우리는 이제 못 돌아가, 익숙한 도우너의 대사를 기다렸지만 그날따라 타임 코스모스는 쌩쌩했다. 그토록 보고픈 엄마와 드디어 꿈 같이 재회했는데 모자를 또 떼어놓다니. 엄마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애를 질질질 끌고 가면서 깐따삐야! 라니. 둘리는 19금이 붙었어도 할 말이 없는 만화다.

 

◇ 구구절절한 둘리의 ‘엄마’ 키워드는 당시 한국만화에서 꽤 흔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만화들은 다 한이 서려있었다. 미국애들이 슈퍼맨 복장을 하고 세상을 구하고 싶어할 때, 일본애들이 에네르기파를 모아서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싶어 할 때 우리는 대체로 울었다. 돌아가신 엄마 품으로 달리는 하니를 자꾸 괴롭히는 나애리 고 나쁜 기집애 때문에. 6살에 엄마를 잃고서 아빠 트럭을 타고 떠도는 까치를 괄시하는 손가락들 때문에. 혹은 남자 보는 눈 없는 영심이가 답답하고 속상해서. 초등학생들은 만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아팠다. 피구공 맞고 죽은 통키 아빠는 전혀 슬프지 않았는데, 둘리 하니 까치는 슬펐다. 그 시절의 한국은 아이들까지도 위로가 필요했을 만큼 서러웠나보다.

 

◇ 둘리, 하니, 까치, 영심이는 어떻게 됐을까? TV 앞에 앉아 그 애들이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던 초등학생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그때 그냥 열심히 살아보려는 애들을 누가 괴롭히지만 말아줬으면 했었다. 착하고 욕심도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은 이제 둘리 같은 애들의 위로가 필요 없을 만큼 잘 살게 됐지만, 대신 뽀로로의 실수 연발을 보고 위안을 느낄 만큼 각박해졌다. 예전엔 그저 둘리는 엄마 품에 안기고, 하니는 있는 힘껏 달리고, 까치는 깡! 야구공을 치고, 안경태와 영심이는 청첩장을 돌렸으면 하고 바랬다. 걔들이 각자 진심으로 원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서 이루는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지도, 공무원이 되고 싶지도 않았었는데. 둘리, 하니, 까치, 영심이가 보고 싶은 요즘이다. <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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