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오도답파여행 26. 서라벌로 가는 길
新오도답파여행 26. 서라벌로 가는 길
  • 김재관(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 승인 2012.04.11 14:01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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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웠던 신라의 원천
▲ 경주 최고의 명문가였던 경주 최씨의 종가인 경주교동최씨고택 사랑채. 1970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2006년 복원되었다.

동대구역을 출발한 KTX열차는 속도를 높이는가 싶더니 금세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대구에서 경주까지 6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17분 만에 도착했으니 1분에 3.5 킬로미터 이상을 지나온 셈이다. 1시간 걸리던 거리가 1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로 바뀌다니……. 세상에!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아닌가! 하긴 백여 년 동안 산을 뭉개고, 물길을 펴고, 땅을 뒤집는 일을 다반사로 한 끝에 이룬 성과이니, 과장한 표현이라고만 할 수 없다.

백여 년 전 걸어서 이틀이 걸렸던 대구와 경주 구간은 1907년 신작로가 놓이면서 반나절 거리로 단축되었다. 이광수는 대구 방문을 마치고 이 길을 따라 신라의 옛 수도인 ‘경주(慶州)’로 향한다. 그는 자신의 경주여행에 대구은행 ‘손달진(孫達鎭)’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대구 편’의 끝에 적고 있다. 손달진은 1931년 경주 지역 유지들이 설립한 소비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할 정도로 대구와 경주 상업계의 주요 인물이었다. 이광수는 실제로 경주에 체류하는 동안 손달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인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경주의‘최부자댁’을 찾아 종손인 ‘최준(崔浚)’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는데, 그는 손달진과 함께 경주소비조합을 설립했던 ‘최윤(崔潤)’의 형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경주행에서 특이한 것은 일행에 순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광수는 순사가 왜 동행하게 되었는지 적지 않았다. 다만 이광수와 동행했던 이상정(李相定, 당시 일본 고쿠가쿠인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던 유학생)이 후일 중국으로 망명해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일본 유학생을 감시하기 위한 조처가 아니었나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팔월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이틀이나 걸리는 백팔십 여리(72Km, 이광수는 18里로 적고 있다. 일본의 1里는 우리의 10里와 동일)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간 이유도 적지 않았다. 이미 대구와 경주 사이에는 1912년부터 영업용 승합차가 운행 중이었다. 굳이 염천의 더위를 무릅쓰고 이광수 일행이 자전거를 타고 갔던 이유가 있음직한데, 그는 이 또한 적지 않았다. 

비록 대구와 경주 사이에 새롭게 닦인 신작로가 비교적 평탄한 지대를 따라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전거를 저어 가려면 적지 않은 땀을 흘려야 했다. “무더위가 어지간해서 의복이 전체로 물에 짜낸 듯하다”고 적고 있으니, 그는 유명한 대구, 영천(永川)의 더위를 체감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하양(河陽)’까지 호기를 부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던 그와 일행들은 그곳에서 점심을 한 후부터 ‘한 발 옮아 놓을 맥도 없을’ 정도로 지친다. 하양과 영천 사이의 거리는 대구와 하양 간 거리에 비하여 절반 정도였지만, 지칠 대로 지친 그들에게는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광수는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고 도착한 경주평야에서 이곳이 풍요로웠던 신라의 원천이었음을 상기한다. ‘사십 리에 뻗친 주란화각(朱欄畵閣, 단청을 칠한 아름다운 누각)과 백만의 인구가 살았다’는 ‘서라벌(徐羅伐)’의 배후지였던 이곳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한탄한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지만 산과 강은 그대로 있다)라고 말하나 이 또한 믿지 못할 일이다”라고 토로하는 그의 속마음은 착잡하다. 신라의 망국을 생각하면 할수록, 멸망한 국가의 유민(流民)과 다를 바 없는 가난한 조선인의 처지가 떠올랐을 것이다. 게다가 강박증처럼 백제의 옛 도읍지에서도 느꼈던 공허함까지 떠오르자, 그는 ‘이제부터 구적(舊跡)만 찾겠다’고 선언한다. 찬란했던 고대왕국 신라를 연상할 수 있는 유적에서 식민지인의 슬픔을 잊고자 했다. 그것은 민족의 자긍심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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