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발표, 묻어가는 자만 억울하다
조별발표, 묻어가는 자만 억울하다
  • 유헌식(교양기초교육원)교수
  • 승인 2012.04.12 16:54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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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조에서는 저하고 한 사람만 발표를 준비하고 다른 학생들은 조모임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조별발표에서 다른 조원들의 무관심에 대해 어느 학생이 이렇게 불만을 표시한다. 나는 물었다. “그래서 억울한가요?” 학생이 답한다. “억울하기보다는 너무들 무책임해서 그럽니다.” 나는 말한다. “조별발표에서 무임승차하는 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학생이 조별과제를 하는 데 기울인 노력은 오롯이 자기 것이 될 터이니 억울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손해를 본 사람은 오히려 무임승차한 사람들이지요.”

참여와 소통을 중시하는 내 수업의 전반부는 자주 조별발표로 진행된다. 그런데 수강인원이 많은 경우 조별발표에서 무임승차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들 자신의 ‘나 하나쯤이야’하는 방관주의와 슬그머니 묻어가려는 요령주의가 이러한 행태의 일차적인 문제이지만, 조원 전체가 발표준비에 참여할 경우 그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불가피하게 소수자에게 발표를 위임하는 경우도 생긴다. 후자의 경우 발표의 효율과 질을 높이기 위한 처사여서 발표준비에 불참한 학생들을 나무라기도 난처하다.

하지만 조별발표의 의의는 단순히 ‘발표의 질’에 있지 않다. 하나의 과제를 놓고 다른 학생들과의 소통하여 합의된 결과를 발표로 제시하는 일이 조별발표의 목적이라면, 여기에서는 ‘훌륭한 발표’에 못지않게 ‘발표를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 준비과정에서 조원들은 타인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발표’라는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의견의 충돌과 대립이 생길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경험 자체가 지극히 소중하다.

주어진 과제에 대한 견해가 달라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발표할 때 그 사실을 그대로 공표하면 그만이다. 조원들이 과제를 수행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그 흔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발표준비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조원 상호간의 민주적인 의사소통은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습동기를 부여받아 학업에 한층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묻어가는 자는 결국 이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조별발표는 조원 수에 상관없이 조원 모두가 준비와 발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발표에 대한 평가는 개인이 아니라 조에게 주어지는 한에서 평가의 책임은 조원 전체의 몫이다. 공동책임을 위해 조장은 작은 몫이라도 ‘함께’ 나누어 조원 모두가 발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독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문화 풍토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과제를 해결하는 학습태도를 습득하기 어려운 교육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자발적인 발표와 자율적인 준비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율적인 인간의 육성’이 고등교육의 교육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할 때, 조별발표는 학생과 학생 그리고 학생과 교수가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기 위한 교육현장의 가장 작은 단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별발표에 소극적인 학생들은 이제부터라도 방관자적인 무임승차자의 자세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기의 몫을 챙기고 서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유헌식(교양기초교육원)교수
유헌식(교양기초교육원)교수

 yooriu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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