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의 또 다른 도시 동대문 시장 사람들을 만나다
서울 안의 또 다른 도시 동대문 시장 사람들을 만나다
  • 박윤조 기자·이혜린 수습기자
  • 승인 2012.04.16 12:07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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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의 또 다른 도시 동대문 시장 사람들을 만나다




서울 하늘에 어둑어둑 내린 밤이 무르익을 때쯤 되면 여느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서울안의 또 다른 도시, 바로 동대문새벽시장이다. 모두가 집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각, 동대문새벽시장은 오히려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지난 4일 밤 10시. 4호선 동대문 8번 출구에서 나온 기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오랜만에 찾은 동대문 거리는 한눈에 봐도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인 관광차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중국인 가이드가 관광객을 통솔하는 것도 심심찮게 보였다.  <편집자 주>

 

 

 

중국인 관광객을 통솔하고 있는 여행가이드.

큰 쇼핑몰인 ‘두타’에 들어가니 어딜 가도 들리는 중국어와 일본어에 정신이 없었다. 안내방송도, 매장상인들의 말에서도 한국어는 찾아듣기가 힘들었다.
요즘 동대문에서 쇼핑하는 사람의 70%는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다. 동대문시장은 2002년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돼 현재 하루 유동인구 100만 명, 하루 7,000여 명의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국제 시장이 됐다. 동대문은 3만 여 개의 점포가 자리 잡은 거대한 하나의 쇼핑몰이고, 패션도시였다. 문득 이곳에서 밤잠을 줄여가며 매번 새로운 패션트렌드를 창출해내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쇼핑몰 내 소매점포상의 일상


두타 내의 여성 옷 전문 매장 ‘미스데이지’ 김창수(30)사장을 만나 동대문의 일상을 들을 수 있었다. 평일에는 3~4시간 밖에 잠을 못 잔다는 김씨는 매일 저녁 9시에 출근한다. 출근 후 물건을 확인하고 매장별로 주문을 넣고 한숨을 돌린다. 그 후에 손님들을 받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어느덧 새벽 5시가 되면 퇴근한다.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인 다음에 일어나 다시 공장관련업무, 가게업무를 보고 나서야 여가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긴다. 바쁜 하루하루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동대문에 발 담근 지 1년차 때는, 바이오리듬이 완전히 깨져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김씨는 몇 년 전만에도 이쪽 분야가 전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엔 동대문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걸음이 뜸해짐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에게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앞으로 중국인과 일본인마저 그 수가 줄어든다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죠)”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예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대문에서 밤새 쇼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라 첫차타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온라인쇼핑몰의 발달로 인한 타격은, 안 그래도 불경기여파에 허덕이던 동대문 시장사람들에게 큰 짐이 됐다.


그래도 팔고 싶던 옷을 팔 수 있던 때는 재미가 있었다. 유행을 선도하고,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주 고객이 되면서부터는 팔고 싶은 옷도 팔 수가 없게 됐다. 김씨는 “요즘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화려한 색상위주의 옷과 연예인들의 의상을 주로 판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대변하듯,  매장에는 옷을 고르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동대문 시장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상
동대문시장 상인들은 서로 자기들을 ‘시장사람들’ 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보다 밤에 눈뜨고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보니 연애도 사랑도 시장사람들끼리 하게 된다고…. 밤에 일하는 것이 누구보다 힘든 것을 알기에 ‘일반인’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김씨의 말이 생각났다. 벌써 밤 12시가 다 됐다. 슬슬 하품이 나오고, 몸이 나른해 기자는 카페인 섭취로 몸을 달래며 동대문의 밤거리를 나섰다.

유어스 쇼핑몰 앞, 지방으로 보내질 옷가방들.

동대문새벽시장에는 아까 들렸던 쇼핑몰 두타와 같은 상가가 여러개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U:US(유어스) 쇼핑몰 이었다. 입구에서 중년 남자 여럿이 정신없이 옷들을 포장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옷가방, 짐을 건물 밖에다 놓고 장부를 기록하며 바삐 움직인다. 그리고 그 옷가방과 짐들은 신기하게도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조그만 가방을 매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깨알같이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문서와 장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바로 동대문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입삼촌’이다. 지방의 오프라인 옷매장, 쇼핑몰 운영자들이 매일 발품을 팔며 동대문 시장에 나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을 대신해 물건을 주문, 구입 하고 직접 배송까지 해주는 ‘사입’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눈썰미는 필수, 신뢰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어스 매장 내의 매점에서 사입일을 하고 있는 한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휴식을 취해야하는 매점에서조차 바쁘게 장부를 작성하고 정리하고 있었다. 사입삼촌은 “나 바쁘니까 안되요”라며 기자의 인터뷰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12시가 지나 늦은 밤 시간이 되면 오히려 사입삼촌은 더욱 정신없이 바빠진다. 전국, 또 해외로 옷을 원활하게 유통하려면 새벽 1시부터 3시까지의 동대문은 붐비고 바빠야 한다.
유어스 쇼핑몰 앞 사거리를 나오니 옷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이리저리 활보하고 있었다. 도매상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길거리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에 치이고, 줄줄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노란 천막의 노점상들을 힘겹게 뚫고 가니, 많은 옷이 들어있는 봉투를 한쪽어깨에 메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새벽 3시가 다 돼가니, 슬슬 노란천막 노점상이 하나 둘 점포를 접는 모습이 보인다. 이젠 거리에 손님들도 거의 별로 없어, 노점상 주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서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동대문 거리마다 이런 노란천막들이 빙 둘러져 있다. 이 노점상들은 언뜻 보면 다를 것이 없지만 자세히 보면 온갖 명품들로 치장이 된 짝퉁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패션트렌드가 만들어지는 청평화시장

새벽 4시경, 조금은 조용해진 거리와 옷을 실은 오토바이.


동대문도매시장에서 유일하게 영캐쥬얼옷을 판매한다는 청평화시장에 갔다. 기자가 청평화시장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경비원아저씨가 사진을 못 찍게 막았다. 이곳에서 비일비재한 옷디자인 카피, 아이디어 카피를 막기 위한 것이다. 드라마 촬영도 일정가량 홍보비를 받고 협조를 겨우 해줄 정도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하1층부터 5층까지 다닥다닥 2평 남짓한 수백개의 가게들이 붙어있었다. 청평화시장은 이미 봄, 아니 초여름이었다. 3개월 전 트렌드를 미리 예측해 디자인을 하고 옷을 만들어 소매상들에게 유통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른 가게에 뒤쳐지기 십상이다.


청평화시장 내부 곳곳에는 SBS드라마 ‘패션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다음 날 이곳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드라마 속 화려해 보이는 패션업계, 동대문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다는 성공적인 드라마 스토리. 과연 그 실상은 어떨까.


10년째 동대문에서 도매일을 하고 있다는 ‘림프’ 박세준(33) 사장을 만나 1시간가량 얘기를 나눴다. 새벽1시부터 4시까지 한창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줬다. 새벽에 일을 해서 좋은 점은 전혀 없지만, 그는 이 일을 시작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제작하고 유통한 옷 스타일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을 때, 그 사람들이 어디서 그 옷을 샀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레 어깨가 으쓱해지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유행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밤낮 가리지 않고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박씨는 동대문시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도 무한경쟁 입니다. 빈익빈 부익부도 심해서 잘되는 가게만 잘 돼요. 남들 다 잘 시간에도 더 노력해야 원하는 위치에 설 수 있죠.”


조금이라도 다른 가게보다 더 많이 팔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여가생활 없는 일상을 반복한다. 박씨는 오늘도 새벽 6시쯤 퇴근해 3시간 자고 10시에 나와 상가업무를 보고, 사무실에서 디자인 회의를 끝낸 후 저녁 6, 7시에 조금 자고 다시 11시 밤에 일어나 동대문으로 출근한다. ‘남들하고 똑같이 일해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시장사람들이 있기에 지금도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동대문새벽시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박윤조 기자·이혜린 수습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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