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성달성 ⑦비밀유지의 의무
알성달성 ⑦비밀유지의 의무
  • 서 민(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05.01 17:28
  • 호수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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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영웅, 여자는 ‘걸레’로 보는 한국의 ‘性’
 

 지금부터 90년쯤 전, 나혜석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합니다.”
유명 화가이자 배울 만큼 배운 그녀로서는 첩을 여럿 두는 것도 모자라 기생질까지 하면서 여성에겐 정숙하라고 하는 남자들의 행태가 기이하게 느껴졌으리라. 문제는 그렇게 느낀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남성들의 모순에 맞서 싸웠다는 거였다. 그것도 남성들과 똑같이 바람을 피우는 방식으로. 지금 같아도 난리가 날 일이었으니, 나혜석이 사회에서 버림받고 쓸쓸이 죽어간 건 너무도 당연했다.
 지금은 좀 나을까? 공식적으로 첩 제도가 없어졌으니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불륜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건 그때와 마찬가지다. 부인이 바람을 피우면 “내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여자가 참아야 한다”며 부인을 말린다. 게다가 남자들은 룸살롱 같은 데서 얼마든지 유사연애를 할 수 있으니 남자들이여, 남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드리길. 이렇게 남성의 성에 관대한 사회다보니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은 남자는 영웅이 된다. 선배 하나가 우리를 모아놓고 한 얘기. “지금까지 100명의 여자와 자봤어.” 그 얘기를 듣던 우리들은 모두 존경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그 선배를 봤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선배건만, 우리에겐 거인으로 느껴졌다. 반면 여자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정숙해야 한다. 만일 여자가 후배들을 모아놓고 “남자 100명과 자봤다.”라고 했다면, 그 여자는 존경은커녕 ‘걸레’로 매도당할 거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남자 경험이 있더라도 없는 척 시치미를 떼는 게 상책이다.
 상황이 이러니 남녀가 사귀다 헤어지면 여자 쪽의 타격이 크기 마련이다. 그 여자를 볼 때마다 ‘누구누구랑 사귀면서 별짓 다했겠지’라고 추측하는 게 남자들의 본능이니까. 이런 판국에 남자가 그 여자랑 잤던 경험담을 친구들에게 떠벌인다면? 그녀는 순식간에 ‘걸레’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니 둘 사이에 있었던 얘기는 여자를 위해 조용히 묻어둬야 하건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를 못내 궁금해 하는 친구들을 실망시킬 수 없고, 위에서 말했듯이 남자는 잔 횟수가 많아질수록 영웅이 되지 않은가? 없는 얘기까지 지어내서 친구들한테 해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자기가 잠시 우쭐해지려고 내뱉는 말들이 당사자인 여자에겐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1년 전 죽은  아나운서의 예에서 보듯, 여자에게 있어서 둘만의 사생활이 폭로되는 건 목숨을 내던질 사유가 되기도 한다.
 봄이다. 늘 그랬듯이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하고, 또 헤어질 것이다. 헤어지든 잘 되든 이것만은 기억하자. 둘 사이의 일은 둘이서만 간직해야 한다는 걸.

서 민(의과대학) 교수
서 민(의과대학) 교수
서 민(의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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