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영웅전설』 펼쳐놓고 <어벤져스> 보기 - 신의 망치도 막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지구영웅전설』 펼쳐놓고 <어벤져스> 보기 - 신의 망치도 막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5.16 23:22
  • 호수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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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문화in 54

한번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 이 영화는 상당히 밥맛없다. 다른 건 제쳐두고, 아 그놈의 캡틴 아메리카는 못 봐주겠다. 성조기 쫄쫄이를 입고, ‘무적의 성조기 방패’를 ‘휘두르며’ 다른 모든 영웅들을 ‘지휘’하는 ‘전쟁영웅’ 출신인 ‘캡틴’ 하고도 ‘아메리카’(그래, 이제 얘를 그냥 ‘성조기’라고 부르자).

앗 잠깐. 그렇다고 오락영화보고 꼬투리 잡으려는 반미주의자는 아니니까 안심하길. 그저 박민규가 쓴 『지구영웅전설』(2003, 문학동네)의 관점에서 <어벤져스>(The Avengers, 2012)를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영웅이 되고 싶은 황인종 ‘바나나맨’을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다. ‘겉은 노랗지만 속은 흰’ 바나나맨은 결국 원더우먼의 생리대 심부름이나 하다가 영웅이 못 된다. 어쨌든 그는 미국인, 더 정확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아니니까. 책과 영화에 같이 나오는 영웅은 헐크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관점은 유효하다.

다시 성조기가 왜 밥맛이 없는지 돌아가서. 일단 복장과 장비부터가 대체… 황인종 아니라 홍인종이 될 것 같다. 와, 노골적이다. 선거철의 정치인 같다. 그런 그가 모든 영웅들의 기둥이다. 미국 상징으로 도배한 성조기가 중앙에서 앵글을 받으며 다른 영웅들을 지휘·조율하니까 패권주의가 생각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다.

성조기는 신(토르)의 망치조차 막아내는 방패를 들고, 압도적 자본력과 선진기술(아이언맨) 및 정보수집력(블랙위도우)를 활용해 그들에게 대항하는 집단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고(쉴드), ‘정의’를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조준해 심장에 화살을 꽂아 넣는다(호크아이). 헐크? 헐크는 이름 대신 ‘외교정책’이라고 부르자. ‘제발 부탁이에요. 절 화나게 하지 마세요. 정말이지,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박민규가 쓴 대로 헐크는 ‘화나게만’ 하지 않으면 ‘좋은 친구’다. 다만 언제나 조심조심. 화나게 하면 신도 얻어맞는다.

(※아래부터 결말 스포일러)

더 심한 건 결말이다. 아니 잘들 싸우고 있는데 왜? 미국 정부는 뜬금 없이 ‘악의 무리에 맞서’ ‘세계평화를 지키고자’ 뉴욕 한복판 핵 투하를 감행한다. 핵은 아시아에 있으면 대량살상무기기지만, 미국에 있으면 평화유지 수단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결국 그 핵은 아이언맨이 끌어안고 우주로 나가 악의 무리들을 터뜨리는데 쓰인다. 미국은 핵을 보유할 명분이 있고, 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안정성을 갖췄으며, 정의를 위해 사용할 판단력이 있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라고, 삐딱하게 볼 수도 있겠다. 뭐 아니면 말고. 오락영화는 그냥 오락영화 답게 눈이 잠깐 즐거우면 되는 거니까. 다만 영화 보고 나오면서 들은 한 가족의 대화가 찝찝하긴 하다.

각자 어떤 영웅이 제일 좋은지를 말하던 가족의 대화는 이랬다. “엄마는 아이언맨이 제일 좋아. 엄마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어.” “엄마 난 헐크가 좋아. 제일 쎄잖아.” “아빠는 캡틴 아메리카. 영웅 중에서도 중심이잖아.”

어디서 바나나맨이 무릎 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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