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화
[백색볼펜] 화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5.16 23:23
  • 호수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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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렇게 화가 났나요

◇ 학교 정문 앞 도로 한가운데서 셔틀이 한참을 멈춰서있다.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할 때 듬성듬성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빈자리에 앉았다. 말뚝처럼 서 있는 버스기사는 잔뜩 기분이 상해있었다. “내리세요.” 기사가 말했다. “예? 아니… 그냥 갑시다.” 아저씨가 답답하다는 듯이, 또 지겹다는 듯이 한숨 섞어 대꾸했다. “내리시라구요. 학생들 앞에서 망신당하기 싫으면. ‘야’라니? 어디서 막말을 해요 무식하게, 빨리 내리세요.” “‘야’가 그렇게 막말입니까?” 술 취한 아저씨의 발음이 휘어졌다. “아 나 못 내려. 그냥… 그냥 좀 그러려니 하고 가면 안 됩니까?” 기사가 같은 말을 과장되게 끊어 말에 힘을 실었다. “학생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기 싫으면 빨리 내리라구요.”

◇ 기사는 운전석 쪽으로 가더니 차 문을 닫아버렸다. “나 방금 언어폭력 당했거든요? 이 차 운행 안합니다.” 기사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어딘가 전화를 걸며 말했다. 아저씨는 당황했다. “아니… ‘야’가 그렇게 막말입니까? 차 문을 안 열어줘서 내가 실수로 그랬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시고… 그냥 좀 가면 안 됩니까?” 그러나 기사는 완고했다. “나 내일 짤려도 괜찮거든요? 교수에요 교직원이에요? 소속이 어디냐구요?” “거기 용인경찰서죠? 여기 단국대 앞인데요. 정문이요.” 학생들의 짜증이 점점 커졌다. ‘막차’라는 단어가 들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다 돼갔다. “뭐야 진짜”로 시작되는 여자들의 짜증이 버스에 가득 찼다.

◇ 모자 쓴 남학생이 다가가서 기사를 달랬다. “아저씨가 술 취해서 그런 것 같은데, 학생들 봐서 한번만 참으세요. 저희 막차시간도 다 돼가는데…” 그때 난데없이 뒤에서 가방이 날아왔다. “야 이 XXX야.” 아저씨는 달려와 오른손으로 기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뺨을 때린다는 게, 술 취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끌어안고 말리는 남학생들 얼굴에 침이 튀었다. “니가 사람이야 이 XX야? 니가 이럴 수 있어?” 떨리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왜 일을 크게 만들고 그러세요?” 모자 쓴 학생의 말에 아저씨가 흠칫했다. 경찰이 오고 있다는 게 그제야 생각난 모양이었다.

◇ 학생들이 아저씨를 앉히고 떨어진 가방과 휴대전화를 주워주는 사이, 기사는 무슨 명단 같은 걸 만든다면서 차례로 이름과 학번·학년을 적게 했다. 학생들도 화가 폭발했다. “막차 타야 된다.” “내려달라.” 버스 안은 화로 가득 차서 더웠다. 경찰은 5분 만에 도착했다. “때린 거 봤어요? 여기 명단 적은 사람들은 다 본 거예요? 한 대? 한 대 때렸어요? 뭘로?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아 손바닥으로.” 앞 다퉈 내리는 학생들에게 밀리며 아저씨가 말했다. “때리지는 않고, 손이 안 닿았잖아…” 남학생 몇 명이 남아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머지는 내려서 다른 셔틀로 갈아탔다. 갈아탄 버스 안에서 학생들이 수근 거렸다.

“왜 그랬대?” “‘야’ 때문이래.”  

 

<칙>

김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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