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오도답파여행 29. 신화와 역사
新오도답파여행 29. 신화와 역사
  • 김재관 교수
  • 승인 2012.05.16 23:26
  • 호수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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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
▲형산강과 남천을 따라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진귀한 물건을 싣고 온 배들이 짐을 내렸다는 월정교의 복원현장.

안압지(雁鴨池)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전성기 시절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신라의 동궁(東宮)에 속해 있던 월지(月池)였던 안압지 주변에는 천년왕국 신라의 주요 유적들이 모여 있다. 동궁지의 동쪽으로 분황사(芬皇寺)와 황룡사지(皇龍寺址)가 있고, 서쪽으로 첨성대(瞻星臺)와 계림(鷄林)과 인왕동 고분군들이 있고, 남쪽으로 신라의 정궁(正宮)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반월성(半月城)이 있다. 그야말로 신라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왕조의 멸망과 함께 이곳은 폐허로 변했고, ‘월지’ 또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기러기와 오리들의 차지가 되었다. ‘안압지’는 멸망한 왕조의 슬픈 잔상이다. ‘월지’라는 이름을 잃고 ‘안압지’가 되어 버린 이 연못에는 왕조의 성쇠와 함께 했던 쓸쓸함이 담겨있다.


이광수가 안압지를 찾았을 무렵, 못은 가뭄으로 물고기들마저 살지 못하는 상태로 망가져 있었다. 중국 쓰촨성 동쪽에 있다는 무산(巫山)의 열두 봉우리처럼 가산(假山)을 만들고, 페르시아와 인도 등지에서 들여 온 동물과 새를 길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던 곳은 기러기와 오리조차도 볼 수 없는 늪지로 변해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원컨대 이 못만이라도 옛날 형체대로 영원히 보존해 주었으면……”라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나 안압지의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지게 되니 이광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아직 본 이름을 되찾지 못했으니, 복원이 끝났다고 하기에는 이르다. 1975년 시작한 발굴로 이곳이 신라의 동궁지이자 월지였음이 밝혀졌으니, 이제라도 원래 이름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광수는 경주에서도 여전히 조신민족의 영광과 관련된 표상에 집착한다. 김알지의 탄생 신화와 관련 있는 ‘계림’을 찾은 그는 신성한 숲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비각에 대하여 비판한다. 오늘날도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숲을 이룬 이곳에 담장까지 두르고 서 있는 비각은 왠지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순조의 명에 의해 세워진 계림비각은 신성한 숲의 기운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광수는 이 비각을 신성한 계림을 ‘오독(汚瀆)하는 추악(醜惡)한 것’이라 적었다. 그는 다른 여행지에서도 조선왕조와 관련된 유적에서는 극렬한 표현을 삼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식민화를 막지 못한 조선왕조에 대해서는 무능하고 부패한 과거로 규정했지만, 신라를 포함한 삼국의 역사는 흠모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그는 비참한 현재의 상황을 대체하기 위해 더 먼 과거를 끌어냈다. 그는 이를 통해 민족의 미래를 위한 영광의 표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국력을 신장시킨 문무왕을 자주 거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광수의 경주여행에서 재미있는 점은 ‘괘릉(掛陵)’을 문무왕의 능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는 괘릉의 사자상을 “문무왕릉 전에 쭈그리고 앉았는 네 마리의 사자가 당시 포효하던 주인의 기념이다”라고 적었다. 1699년 『동경잡기』의 기록을 참조한 경주 김씨 문중은 1970년대까지도 괘릉을 문무왕릉으로 여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신라 왕릉의 실제 주인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후대의 기록에만 집착한 결과이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왕조가 들어서고, 다시 조선왕조로 바뀌면서 서라벌의 이름도 동경, 경주로 바뀌었다.


옛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서면 도시도 성쇠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최근 경주시는 많은 돈을 들여 신라의 유적을 복원하고 있다. 반월성 남쪽의 월정교(月精橋) 복원사업도 찬란했던 신라를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의 쇠락과 함께 무너져 버린 유적을 복원하는 사업을 관광산업의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경주의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복원사업은 이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의 의미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재관 교수
김재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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